대체 어쩌라고?
대체 어쩌라고?
남쪽 지방이지만 우리가 머물 곳은 바닷가라 추울 것 같았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체질이어서 가볍고 폭신한 기모? 넣은 바지를 새로 사고 싶었다. 어, 하고 있다가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쫓기듯 집을 떠나게 되면 어쩌나. 중요한 건 글쓰는 시간 틈틈이 서포 문학관으로, 진채봉, 적경홍,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이소화(난양공주),심요연, 백능파 등, 8선녀가 노니는 구운몽 공원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왼종일 어찌 실내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쪽 길은 잘 닦아놓아 조금 가팔라도 저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올라갈 수가 있다. 반대편은 험로다. 자칫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 수십길 낭떨어지로 곤두박질치게 생겨있다. 봄에 갔을 때 나는 겁이 잔뜩 났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전국 국립공원으로 출장다니는 식물학자인 조카 독려로 작은 자갈 군群이 운동화 밑에서 자그락, 자그락 밟히고 각종 나무와 잡초가 뒤엉킨, 길도 아닌 길을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고급스러운 브랜드 바지는 필요 없다. 작업복도 되고 마을에 잠시 나갈 때 입을 수도 있는, 그렇다고 되는대로 아무거나를 사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오후에 집밖으로 나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아무래도 이 외출이 나에게 합당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 마디로 무리였다. 오늘은 죽도 밥도 맛이 안나서 아침에 겨우 몇 숟갈 뜨다 말았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기운이 없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나는 로데오 거리의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어쩌라고? 그럼 내 몸의 이 현상이 교통사고 후유증이란 말인가? 외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L 작가가 최근 출간한 소설집이 문앞에 놓여 있다. 나보다 연상인 L 작가의 노고에 감탄한다. 얼마전 '꼭 죽을 것만 같아' 라고 토로하더니 아마도 책을 쓰느라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한다. 요즘 글 한 줄도 못쓰는데 나는 왜 이리 기진맥진일까?
내 몸 상태에 실망이 크다. 며칠 전 건강진단 결과는 이상없음 이었다. 대체 무얼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