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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힘들어

능엄주 2021. 7. 26. 22:28

환자가 힘들어

 

병원에 도착하니 시간은 9시 50분. 진료 개시 10분 전이었다. 나는 내가 일등으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여겼다. 웬걸! 계단을 오르는 한 남자. 그는 나의 몇 걸음 앞에서 2층으로 오르는 중이었다. 두 단계로 꺾어져 올라가는 계단이어서 처음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차! 했다. 나로서는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까지 일찍 달려오느라고 노력한 것이었다. 그런데 핑계같지만 열대야로 뒤척이다 보면 보통 25,26시에 잠드는 게 일쑤였다. 오늘은 재활용 쓰레기 수거하는 날이기 때문에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지저분한 쓰레기를 두팔로 감싸안고 나가려면 남들이 안 일어났을 때가 나에게는 편했다.  쓰레기 수거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일을 추어내지 못해 배달이 늘어나서인가. 페비닐, 택배받은 포장 상자,  각종 플래스틱 용기,  스치로플, 캔 종류 같은 쇠붙이, 유리 그릇, 종량제 봉투에 담은 잡동사니까지, 집안에서 분류하지 못한 터라 시간이 꽤 걸렸다. 출근하는 젊은 이들이 후딱, 후딱, 쓰레기를 분류하고 총총히 발걸음을 돌리는 그 틈에 끼어서서 나는 이번 주 더 많이 증가한 쓰레기 처리가 버겁기만 했다.

 

땀을 흘리고 나서 샤워하랴 머리 말리랴. 주사놓기 편리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허둥대며 지하철에 올랐다. 지난 주 처음 래원했을 때 3시간 여를 대기하다가 원장님 진료를 받았는데, 오늘도 접수 후 대기의자에 앉아 두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나보다 늦게 온 환자들이 속속 진료실에 들어갔다. 간호사에게 까닭을 물으니 그들은 먼 지방에서 올라와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려 예약을 해놓고 갔다가 다시 온거라고 했다. 아, 그런 수도 있구나. 그만큼 잘 보는 병원인가.

 

환자 한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가면 대략 30분 가량 소요되었다. 교통환자로 병원 다닐 때 진료과 의사에게 아픈 이야기를 펼치지도 못하고 기계적으로 검사지와 약 처방전을 떼어주면 받아가지고 나오던, 통상 3분 진료 때와는 무엇이 달라도 달랐다. 스템프로 척 척 찍어내듯, 환자가 3분 간격으로 냉방된 진료실을 폴랑폴랑 들고나는 풍경과는 다른 경치에 홀려, 나는 마음속으로 참을 忍자를 기억했다. '진료비 절대 비싼 거 아니예요. 그만한 가치 있어요. 진짜 병원에 온 기분 날 겁니다. 점점 통증이 완화되는 걸 느낄 거예요.' 심각한 교통사고로 온몸에 상처를 품고 아직도 병원을 전전하다가, 이 병원을 알게 되어 나에게 소개해준 동학同學의 말을 토대로 묵묵히 참고 기다렸다.

 

그때였다. 전화가 울렸다. 코로나19 이후 모임, 만남이 뚝 끊기고 나서 처음 받는 초등 동창의 전화였다.

 "姬야! 너는 건강 어때? 나 여기 정형외과야. 목이랑 어깨, 허리에 주사 맞고 물리치료 지금 막 끝났어."

 "뭐? 너도 정형외과에 왔다고?"

 나는 큰 소리를 낼 수없어  밖으로 나와 간단히 응대했다.

 

그 친구는 올 여름 집수리를 했다고 한다. 아들 3형제가 모두 나서서 일손을 도와주었다는데, 아들 셋에게 밥 챙겨주느라고 친구 나름으로 힘들었던가.

"일하는 분들 외에 장정이 셋이나 투입 됐는데 너는 좀 가만히 지켜보기나 하지?"

"너랑 나랑은 너무나 비슷한 게 많아. 신기하지 않니? 우리 치료 잘 받고 인사동에서 만나자. 코로나19 이거 언제 없어지니? 내가 전화하면 그냥 마스크 쓰고 나와, 알았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통화를 중단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30분. 나는 목과 어깨, 등허리에 주사를 10 개 정도 맞았다. 치료 과정이 또한 인내의 극치였다. 친구와 나는 어쩌면 같은 날, 비슷한 부위를 치료하는가. 

 

나는 어지러워서 조심조심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친구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도는 사이, 나는 환자가 힘들어 빈자리에 앉자마자 꾸벅 꾸벅 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