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려고 한밤중 2시에 잠이 깼던가. 위장이 버거워 잠이 깨는가. 엊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는 했다. 이상스럽게도 전에는 잘 몰랐더니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가 않았다. 내가 저녁 식사로 먹은 것은 콩국수였다. 삼복 염천에 콩국수를 먹으면서 영양을 고려하고 더위를 식히는 음식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 식성을 닮아 국수와 겉절이를 잘 먹는 것 같은데 기분좋게 잘 먹어 놓고서 갑자기 속이 불편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이 불편하다는 것은 3개월여 동안 삽으로 퍼담아주는 양, 한방 약을 미련하고 바보스럽게 먹어준 탓인가. 행여나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해준 약을 그들의 지시대로 잘 먹지 않으면 뒤탈이 생길까 저어했다. 약을 먹어야 환부가 차도를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성실하게 복용한 화학성분 일색이라는 그 약, 그 약 때문에 내 위장이 격동을 겪어서인가. 오른 손 왼손 손가락이 모두 저리고 온몸이 퉁퉁 부어 으스스한 것이 창밖에 돌개바람이, 천둥번개가 하늘을 울리고 있는가 걱정된다.
D 대학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소설 작품을 한 편 보내달라는. 나는 유감스럽게도 펜문학 봄호에 단편 소설을 게재한 이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 그것도 지난가을 강원도에서 장편을 쓰는 틈틈이 수필 40여 편과 단편 하나를 근근 써온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이후 나는 별로 작품 실적이 없다. 별로가 아니라 전무한 상태다. 오로지 장편에만 몰입했고 그 초고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 전 신경을 기울였으므로 삼천리 금수강산에 벚꽃이 흐드러진 3월 말경 지난 가을 타계한 동생 묘소에도 다녀올 겸, 남해로, 노도로 간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동사거리에서 마귀의 화살을 맞은 것, 그 때문에 실제로 작품을 쓸 수 있는 심적 물적 환경을 누리지 못했다면 구구한 변명이 될 것인가.
불의의 재난에 아프고 괴로워서 글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나날이었다. 그게 자그마치 3개월에 이르러 치료와 보신에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추락한 것이다. 병의원에서 고장난 부분에 집중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짧은 생각으로는, 오히려 기존의 생체 리듬을 교란시켜 새로운 병증을 유발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무슨 치료를 어떻게 했길래 숱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왜 미로를 헤매는 환자수준인지, 본격적이고 정상적인 치료는 언제 가능하게 될는지 혼란 스럽다.
'차라리 녹용을 먹어봐'
병,의원 중단하고 먼저 기운을 돋워보라는 지인의 권고였다. 치료도 기운이 있어야 효과를 본다는 말인가.
'청년들도 그렇게 사그리 침을 찔러대면 몸살 난다고요.'
'약도 자꾸 먹으면 위장 버리고 신장 방광 고장나요.'
경험자들의 충고였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이미 습관처럼 병원 가는 일이 몸에 익었던가. 날만 새면 달려가는 어리석음. 곰곰이, 차분하게 사고할 능력을 상실한 나는 꼭두각시가 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관여해서 이루어진, 저작물을 나에게 발송한다는 소식이 왔다. 모두 만족하고 계신다는, 나에게 책을 보내준다는 높으신 분?의 전화였다. 아프고 괴로워도 나는 그 책을 얼른 보고 싶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 책이 내 앞에 등장할 것인지. 매사 짜증나고 울적하게 돌아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슴이 설렌다. 내 노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인연있는 모든 유정 무정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