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비 때문인가

능엄주 2021. 5. 4. 21:14

비 때문인가

 

올 봄에는 비가 자주 많이 내리는 것 같다. 꽃 필 때 심술부리듯, 비 온 것을 기억하는데 이제 여름으로 들어가느라고 다시 비를 내리는가. 종일 오는 비는 빗소리의 낭만이고 운치고 바랄 수가 없다. 짜증만 날뿐이다. 기실 오늘은 중요한 외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최소한 움직일 수 있다면 더 연기해서 하등 이로울 일이 없는 볼일이었다.

 

본의아니게 교통사고 환자가 되고 나서, 한 달 여가 다 지나가도록 치료를 열심히  받았으나 두통 여전히 괴롭고, 목은 뻑뻑한 게 쳐들지도 수구리지도 못하게 나를 압박한다. 기가 흐트러져서 뭐를 해도 집중이 안되고, 그나마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좋아했더니 웬걸, 내 몸에 연결된 모든 기관부위들이 합동으로 제발 멈추라고 명령했다. 목이, 허리가, 눈이 불평하지 않더라도 나는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을 만큼 심정이 편편치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읽기를 시작했으면 마저 읽어야지,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다른 또 하나의 나가 항의를 해도 나는 더 이상은 아무 것도 거들떠보기 싫었다. 병원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려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건 완전 일방통행이다. 몸 아픈 것보다 마음 아픈 게 더 심각한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정해진 순서대로다. 내가 마치 실험용 쥐가 된 기분이고, 병의원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추종하는 수동적인 형태가 된 것 같다.

 

병원에 가기 싫어서, 환자 하기 싫어서 내일이라는 새로운 날이 밝아오는 게 혐오스러울 정도다. 사람들은 그만하기를 천만 다행이예요. 그렇게 말하고 나 자신도 그 말에 동의한다. 더 아프고 더 불행한 사람도 있는데, 더구나 코로나 19로, 백신을 맞느냐 안 맞느냐. 백신을 맞고 불구가 되고, 여러 장애를 겪은 이들도 있는데, 눈에 보이게 부러진 데도 없는데 왜 이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할까. 

 

오늘 비오는 날이어서 일까. 아침부터 밤이 될때까지 나는 마음의 정처를 잃고 방황했다. 기가 흐트러져 팔다리가 헛 놀았다고할까.  접시를 들고 있다가 떨어트리고. 책 페이지를 넘기다가 그냥 닫고 만다. 집밖에도 어수선하고, 나의 내면도 몹시 시끄럽다. 여고 시절 조회시간 마다 합창하던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는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울리고 있다.

 

골머리가 너무 아픈 것이다. 왼종일 착실하게 내리는 비 때문인가. 비가 곧 정답은 아닌 듯하다.  멀쩡하게 하루해를 그냥 흘려 보내다니. 또 별 수 없이 '아프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칩니다' 를 되뇌일 따름이다. 뭐라도 붙들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