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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내 친구

능엄주 2020. 12. 19. 14:14

선량한 내 친구

 

별 스런 짓을 내가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별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시상식 초대장을 받고 그럴 만한 몇 몇 친구에게 전화와 카톡을 나누었다. 참석하면 좋고 날씨도 차거운데 참석을 안한다 해도 조금도 섭섭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코로나19가 문제였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시간시간 전해지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소식이었다.

"얘! 나는 그럼 무엇을 준비하면 되니?"  와주는 것만도 고맙다라는 내 답변에 그는 꽃다발을 가져온다고 한 것 같다.

20여년 전 함께  중국 시문학을 공부하던 친구로, 나는 그냥 예쁜 성탄 카드 날리듯 보낸 초대장이었다. 그가 오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나지 못한 시간이 무한히 길었기 때문이다. 가끔 카톡은 한 번씩 왔지만 어떤 일로든지 서로 자리를 같이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너가 온다고? 괜찮겠어?' 수시로 땡,땡, 울리는 안전 문자가 신경이 쓰여서 내가 물었다.

"매주 기도하면서 1박2일 철야도 하고, 그냥 전국 여기저기 다 다녀!  금강경 하면 코로나가 못와!"

 그녀는 나의 시상식장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래 그럼 그날 보자!"

나는 의외였지만  유쾌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내용을 알수 없는, 언뜻 보아서는 무슨 소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뒤숭숭한 카톡이 날아왔다.

'아들이 손자를 맡긴 대,'

'3단계가 되면 약도 없어.'

'할아버지 환자 두고 집비우지 말라고 아들이 야단 쳐.'

내 나름으로 철자법을 바로잡고 해석한 내용이었다. 결국 시상식장에 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코로나가 장기간 계속 확진자를 쏟아내므로 친구 사이도 바야흐로 인간기피, 혐오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오늘 아침 또 한 친구가 물었다. 기실 걱정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두번도 더 땡, 땡, 울리는 확진자 소식을 전하는 방역당국의 코로나 관련 문자, 코로나19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교란하고 붕괴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코로나19는 심각한 위협이고 공포가 된지 오래다.

 

나는 주최측에서 요구한 참석 인원 숫자에 그날 오겠다고 말한 몇 명을 추가해서 보고했다. 더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하게 온다고 밝힌 인원에 대해 다시 전화하기가 번거롭고, 참석과 불참에 대해 관대? 하고 싶어서였다. 오면 오는대로 추위와 코로나를 뚫고 와준 분들에게 내 방식으로 고마움에 답하기로 심정을 정리했다. 안오면 안 오는대로 섭섭하지 않을 수 있는 작금의 불안한 환경이 아닌가.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할 즈음,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음식을 대접받고 달게 먹었을 때처럼, 기꺼이 와 주는 내 선량한 친구들이 무척 반가울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맹랑한 마음이 지금에 이르러서 합당한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