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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장편소설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을 읽고/곽정효글

능엄주 2020. 9. 19. 08:19

 

변영희 장편소설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은 직지소설 문학상 수상작이다. 책을 덮으며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삶에 자신과 상관없는 것들이 끼어들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다면 본연의 모습을 잃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보통의 인간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에서는 지독한 지옥을 겪은 사람이, 억울하게 고통을 겪은 주인공들이 남을 위한 삶을 살리라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불심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의 마음자리를 따라가 볼 수 있다.

부역자로 몰린 경희 아버지는 행방이 묘연하다. 아버지는 지구상에 좌익 우익이란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피신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죄가 성립된다면 그 원인은 당시의 시운이고 6.25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한강 다리가 끊겼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한강 다리가 폭파되던 그 밤 아비규환의 지옥을 탈출하는 방법이 그 누구에게 있었던가. 하지만 식구들은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눈총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어머니는 아무 때나 호출 당했다. 경찰서에 불려 간 어머니는 초죽음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사찰계 형사들은 집으로 매일 출근했다. 동네 강아지도 집 가까이 오지 못할 만큼 집안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경희는 고정간첩단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는다. 간첩단 두목 한춘경의 애인으로 죄를 덮어씌운 것이다. 한춘경이 경희와 연인관계라고 자백했다고 했다. 열여섯도 채 안 된 어린 소녀가 무슨 삼십 대 후반의 애인이란 말인가. 애인은 고사하고 한춘경의 얼굴을 본 것도 고작 두 번이었다. 하늘이 격노할 일이었다. C시의 형무소에서 복역한다. 몸도 마음도 온전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내가 이대로 죽으면 누가 내 딸을 살려낸단 말인가. 이를 악물고 병상을 떨치고 일어난다. 어머니는 무심천 건너에 있는 원능골 집과 임야를 매매하기로 작정한다. 그 대지는 예전부터 C시의 유지들이 학교 부지로 점찍고 잔뜩 눈독을 들이던 요지였다. 그것을 팔자, 딸을, 경희를 구출해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 간절해진 어머니는 해명 스님에게 땅을 매입하고자 하는 분이 있으면 연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은 죄명도 모호한 채 장시간 부재중이고 중병에 든 이종 아우가 어린 것들 데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다. 큰딸 경희는 정확하게 밝혀진 증거도 없이 감옥에 갇혀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대지를 구매할 작자가 있을지, 더구나 부역자의 땅을 아무도 모르게 처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님은 난감하다.

해명 스님은 선정에 든 다음, 백팔배를 드리면서 염불을 시작했다.

우주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이고 부처님 설법인데 모든 상은 허망하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거나 상으로 보려 하지 말고, 귀로 들으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님인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마음이 부처님이며, 부처님이 곧 마음임을 알지 못하느냐.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느니라. 몸이 건강할 때도 또한 병들어 쇠약할 때도 부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느니라.

부처님! 살아서 나오기 힘든 화당지옥이 웬말입니까, 원통하고 원통하여이다. 가엽고 가여우이다. 김경희 꽃다운 청춘이 애닯고 애닯으오이다. 그 어미와 딸을 악마의 소굴에서 건져 주옵소서.

무엇을 더 희구하고 갈망하며, 더 무엇을 움켜쥐고 착에 머물러 내 것 네 것을 시비하겠는지요. 천하 만물이 꿈이요 물거품이며 그림자 이온데, 번갯불이며 뇌성이거늘 부처님 보는 자가 부처요, 부처가 있는 곳이 극락이라 하지 않더이까.

해명 스님의 금강경 염불은 지칠 줄을 몰랐다. 온 우주법계 유정 무정이 해명 스님의 금강경 염불 소리에 놀라 술렁술렁 요동치고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원력이 움직인 결과일까? 장수 어르신으로 불리는 이승천이 찾아왔다. 이승천은 숨은 애국자요 지역의 자산가였다. 이승천은 학교를 지으려 한다, 땅을 사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영치금을 넣고 변호사 비용을 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 시국을 잘못 타고난 죄라는 변호사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렵게 변호사를 선임했으나 경희는 C시 지방법원에서 3년 징역, 16개월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어머니는 승복하지 않았다. 고등법원에 상고 했다. 서울의 새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또 돈이 들었다. 경희는 원능골의 땅 외에, 무심천 건너 모충동의 텃밭 딸린 평수 넓은 기와집과 내과 의사에게 세놓은 석교동 2층집, 도합 집 두 채를 더 팔아 올린 다음에야 서대문 형무소를 출옥할 수 있었다. 무죄 석방이었다. 그러나 잠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동생들을 소름 끼치게 했다. 괴이한 병이었다. 고문, 구타와 학대의 여파였다.

경희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원혜암으로 가 평정을 되찾는다. 세상에서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해명 스님의 자등명법등명의 가르침을 받는다.

문희는 찾아갈 곳도 아는 친지도 별로 없는 C시에 남아 학업을 계속한다. 미자 엄마의 도움을 받는다. 아버지는 C시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몸이었다. 아무 이념도 갖지 않은 아버지는 이념에 쫓겨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엄청난 아이러니였다. 간혹 등굣길에서 아버지 친구를 만난다고 해도 그들은 문희를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하소연하는 것도 아닌데 친분 있는 이들이 더 빨리 변심했다. 인심이 수심이 되고 한때의 변심을 넘어 적대 관계로까지 변질되고 말았다.

문희는 또 어머니의 계 사단으로 곤혹을 겪는다. 듣기로는 곗돈을 먼저 타간 사람들, 곗돈을 제때 내지 않아 문희 엄마가 대신 입체 해준 사람들까지 문희네 대성동 집으로 우우 몰려가서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살림살이를 샅샅이 뒤져 뭐든 되는대로 집어 들고 왔다고 자랑처럼 떠벌렸다. 상호 엄마도 계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소문이었다. 미자 엄마는 그 일을 혼자 겪어낸 문희가 가엽기만 하다.

경희는 미인대회 출전 후 박용덕 사장의 눈에 들어 며느리가 된다. 시댁에서 조신하게 지내던 경희가 출산 후 움직인다. C시에 내려 와 C여고를 방문하고 문희를 살펴 준 미자네도 감사한다. C시에서 돌아온 후 친정엄마가 다녀가셨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신장에 염증이 심하고 위장에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경희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남과 북의 극단적 대치 상황, 이데올로기의 광풍이라고 여긴다. 보살펴주어야 하는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생사불명이 된 아버지와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이승을 하직한 어머니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이 경희를 왜소하게, 한없는 비탄에 빠지게 했다.

간난 고통과 무수한 시련은 경희에게 위대한 교과서요 스승이 되었다. 시아버지 박용덕 사장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선한 본성과 깊은 불심으로 경희를 이끌어 준다. 시아버지 이전에 한 사람의 훌륭한 인격자요 선각자였으며 혜안을 소유한 인생 길라잡이였다. 아들 민우와 남편 재선의 사랑은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재선은 아버지 박용덕 사장의 깊은 불심을 이어받았다. 경희와는 재혼이었다. 불교 동아리에서 만난 금속과 도심천에서 사랑을 키웠고 결혼했으나 3년 차를 겨우 넘기고 이승을 떠났다. 금숙은 백운화상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했다. 재선은 백운 스님의 직지에 정식으로 도전해 볼 뜻을 품었다. 직지를 연구하려던 금숙의 꿈은 사라졌지만 C시에 무심선원이란 5층 건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박용덕 사장은 직지야말로 마음공부 교재로서 가장 으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승천 씨도 함께 했다. 명상관, 교육관, 실습실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단아하면서도 장엄했다. 무심선원은 박용덕 사장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편이었다. 박용덕 사장의 사회복지 사업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번뇌와 보리, 선과 악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 정신에서 출발했다. 그야말로 무심천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인간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이념이나 폭력적 성향들이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하게 되면 닥치는 대로 초토화시킨다. 숙주가 된 인간들은 비참하다. 시대가 만들어준 나, 사회가 만들어준 나, 본연의 나, 어느 것이 과연 나일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등의 물음이 도처에 널려 있다.

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위해 힘쓰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 구원의 길일 것이다.

[출처]변영희 장편소설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을 읽고|작성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