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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김치 담기

능엄주 2020. 8. 3. 19:32

양배추 한 덩어리 사다놓은 게 일주일인가.

e 마트 너른 매장을 오가며 기껏 사가지고 온 것이 양배추와 청오이, 그리고 영양부추였던가.

식품 - 채소, 과일 어느 것이든 세심하게 관찰하고서야 겨우 몇 종류 사오는 게 고작이다. 매번 씁쓸하다.

 

크기만하고 맛은 전혀 아닌 것들 때문에 까다롭게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양파가 머리통만큼 크게 자란 것, 사다놓고 며칠 방심하면 썩기 바쁜 그것들을 내가 왜 사오겠나.

과일이고 채소고 입맛을 버린다. 안 먹고 말지, 내 생각은 그렇다. 씨 없는 수박과 포도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두꺼운 비닐로 꽁 꽁 묶어 키운 호박, 꽃피고 열매맺지 못하게 밤새도록 불을 밝힌 깻잎 농장 이야기.

 

일년중 이맘때는 파란 사과가 출하된다.그맛이 싱그럽고 아삭아삭 씹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왜 그리 퍼석거리는지. 사과의 본래 단맛이 아니라 조작된 것 같은, 이상하게 질리는 단 맛이다. 외양은 멀쩡한데 껍질은 가죽처럼 단단하면서 속이 곯아터진 참외. 먹고 싶은 과일이 눈을 유혹해도 얼른 가트에 담기가 주저된다.

 

냉장고 안에서 열심히 썩고 있는 양배추를 다듬었다. 토양 자체가 산성이 되었는지, 체질에 맞지 않는 농약을 과도하게 먹고 자랐는지 모르지만, 무르고 썩고  냄새를 피운다. 전에 海觀선생님 - 농약을 주지 않으면 식물이 시들기만 하지 절대 썩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돼지감자와 토란, 생강을 화순 장날 대량 사와 6개월 이상 베란다에 두었다. 아프느라고 그걸 처리할 기운이 바닥나서 방치했다. 그 밀씀대로였다. 시들기만 했지 썩은 놈은 한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양배추를 지금 처치하지 않으면 폭 썩을 것이 틀림 없다. 일을 벌인다. 김치 담기는 번거롭다. 귀찮으면 사먹고 말지, 말은 쉽다. 사먹으러 가는 수고 대신 내손으로 만들어 먹자. 뜻은 갸륵하지만 과정이 복잡하다.  다듬고 씻어, 썰고 절이고,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  마늘 생강 고추가루 젓갈로 버무려 항아리에 넣기까지 무려 3,4시간이다.

시간과 수고가 문제 아니라 요는 맛이다. 맛을 내기 위해서 설탕이나 조미료 넣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자연파괴는 부단히, 도처에서 성행하고 있다. 생태계 변화는 인간의 삶 곳곳에 침투했다. 

파괴의 유령이 인간의 먹이체계에 잠입한지 오래다. 어째야 옳은가. 먼지 같은 쬐끄만 코로나19하고 동거동락해야 하는 21세기에 식재료 걱정은 사치일까.

양배추 김치가 성공하기를, 위장에 내려가 썩지 않기를. 내가 애써 고른 양배추가 제맛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