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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거

능엄주 2020. 6. 15. 20:21

내가 이거

 

내가 이거 잘 하는 일인가.

할만한 일인가. 좋아서 하는가. 어쩔 수 없어서 붙들고 앉아있나.

아침에 눈 뜨고 부터 지금( 20시)까지  컴퓨터 열어놓고 읽을 거리  쓸 거리에 몰두하고 있는

내  형상이 현실에 합당한가, 모자란가.

 

책상에 앉은 상태로 2020년 6월 15일이 저물었다.

무엇을 했지?

무엇을 읽었지?

무슨 글을 썼지?

 

아무리 생각해도 확고한 그 무엇은 없는 것 같다.

쓸쓸하고 심심하니까 인가.

갈 데도 올 데도 없어서인가.

이나마도 열중하지 않으면 하루해가 무진장 길어보여서였나

대망의 역작을 획책하고저 함인가.

 

지치고 힘들면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자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은 잠시뿐, 다음 순간 또다시 책상앞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놀랍다고 할까. 두렵다고 할까. 미련하다고 할까.

그해 봄 보스톤에 갔을 때 난데 없이 밤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무슨 기척에 눈을 떠보니  시간은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었다.

 도화지 구기는 소리도, 피스나 그림 붓으로 물감을 찍는 세미한 움직임도, 나는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아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자신이 그림인 듯, 그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내게는 또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림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듯, 아들은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여태 안 잤니? '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림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그만 실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거리로 난 창문에 새벽 빛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몰두의 시간에 흠뻑 빠지게 되면 '내가 이거' 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몰두가 덜 되었거나 몰두에서 멀어진 정신 상태임이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내가 이거를 왜 하고 있지?' 하고 생각 했다는 것은 오늘 역시 완성표를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맞을 것이다.  몹시 혼란하다. 랜섬웨어 감염 이후 나의 혼란이 심각하다. 해도 안 해도, 가도 안 가도. 궁극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만 멍하다.

코로나19을 겪으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겨우 알 것 같다. 사는 거 참으로 별거 아니다 라는 결론이다.

너무 애쓰지 말라던 서광스님 말씀이 오늘 이 시각에도 이토록 새롭다. 되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나 자신을 편안하게 놓아두자. '내가 이거' 내일은 더 많이 달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