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희 소설집 『영혼사진관』/변영희
변영희 소설집 『영혼사진관』
쪽수: 288
판형: 신국판
정가: 9,000원
발행일: 2008년 7월 30일
ISBN: 978-89-92554-80-0
- 내용 소개
소설을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건 꽤나 오래 되었다.
스물한 살 가을에 소설가의 누각(樓閣)으로 피신하던 때보다 훨씬 빠른 아마도 열셋 그 무렵이었으니 대체 소설을 왜 그리 애지중지
끌어안았더란 말인가. 그것은 순전히 서대문의 붉은 벽돌집으로부터 2.4톤 트럭으로는 다 실을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책 보따리를
끌고 집에 온 禧耕언니 덕분이었을까.
그러나 의욕이나 결심만큼 소설을 써내지 못했고 도리어 나 자신이 소설 그 자체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삶이 곧 소설
이었던 셈이다.
지금 다만 시작에 불과하고 지난날의 방황의 흔적을 돌아보며 자리를 정돈하고 숨을 고르는 바다. 하지만 여전히 부끄럽기는 하다.
그동안 써온 작품 몇 편 『영혼 사진관』이라 명명하고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고민을 거듭하였다. 이 책에 이어 영혼을 테마로 본격
적인 글쓰기 수행을 쌓아가려고 한다. 영혼을 모르고서 어찌 禧耕언니를 소설화 할 수 있으며 존재의 확인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동안 중국문학, 불교학, 동양학의 터널을 뚫고 나와 바야흐로 참 나를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날 차례다. 그 첫 발을 내디딤에 있어 부족하
지만 『영혼 사진관』으로 내 빛나는 여행의 이정표를 삼고자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옛날 옛적에 딸만 셋을 둔 할머니가 살았다. 딸들이 장성하자 하나 둘 출가해버리고 산골짜기 오두막에는 할머니 혼자 남게 되었다.
나이 점점 들어 몸이 쇠약해진 할머니는 옷 보퉁이를 싸들고 큰딸네로 갔다던가. 다음에는 작은딸네로. 이집 저집 옮겨 다녀야했던 꽃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 처지가 새삼 수희의 가슴을 메이게 했다. 추운 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할머니는 옷 보퉁이를
가슴에 싸안고 막내딸 집으로 가던 중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하고 그만 눈구덩이에 넘어져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얘, 아가! 아가야……”
딸을 부르는 할머니의 피를 토하듯 절박한 부르짖음이 수희의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다음 해 봄 할머니가 쓰러진 눈구덩이에서
검붉은 꽃이 피어났고, 그 꽃은 허리 굽은 할머니를 그대로 닮고 있었다고 했다. 이른바 할미꽃이었다.
할머니는 어디까지나 땅 깊은 곳에 해묵은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의연한 고목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그늘에서
나그네의 아픈 다리를 쉬어가게 하기도 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와 그 할미꽃.
(본문 「효도비」 중에서)
*영혼의 먼지가 제거되어 영혼이 맑아지는 영혼세탁소. 영혼이 한 단계 업 되고 진화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니 현숙은 지루하거나 졸리지는
않았다. C 법사님으로부터 영혼을 점검받고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지어 현생으로 연결되었는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의 시원
지가 어디인지, 아예 다 잊었거나 의식조차 없는 윤회 단계를 더듬어 자기 자신을 조명해보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영혼
사진관에 영혼을 찍으러 온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혼에 무슨 문제가 생겨 있는지, 어느 시점에서 어느 부위에 병소가 깃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단 한 방의 영혼 사진으로 선명하게 판별해 낼 수 있었다.
(본문 「영혼사진관」 중에서)
*춤추는 여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 곧장 나아갔어요. 그녀의 여린 손가락이, 입매가, 눈빛이, 동작들이 날렵하고 매우 고혹적이네요. 남자
역시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일어서며 사랑하는 그녀가, 내 님이, 못내 그리워서 찾아 헤매는 몸짓이네요. 비탄한 곡, 피리, 장고, 모두가
애달프게 흐느껴요. 남자가 허리 구부정하게 계속 두리번거려요.
혹 이곳? 혹 저곳? 그대 내 님 어디 계신가요? 주저주저하면서도 절실해요. 지극한 애모의 정을 담은 눈길, 발길, 울고 있어요. 흰 천을
두 손에 감고 벌벌 떨기도 해요. 애간장이 무너지는 거지요. 그토록 그리움에.
(본문 「아버지의 밤」 중에서)
- 한국소설 10월호 신간안내
변영희 선생께서 소설집 『영혼 사진관』을 〈청어〉에서 내놓았다. 표제작 『영혼 사진관』은 언뜻 제목만 봐서는 수년 전에 상영되었던
‘수면의 과학’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스테판이 만든 ‘독심술 기계’가 떠오른다.
이 소설집을 드는 순간 묵직하다. 출판사에서 정성스레 만든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다룬 것이라 무게감이
더욱 있는 듯하다.
선생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방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박사과정에 몸을 담고 있다.
『마흔넷의 반란』 『황홀한 외출』 『오년 후』 등의 장편소설과 『비오는 밤의 꽃다발』 『애인 없으세요?』 『문득 외로움이』 등의 수필집이 있다.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을 받아 수필가로서도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선생의 소설은 구도소설이라 할 수 있다.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안락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행복하지 못하다. 콘크
리트 건물에서 살고 있어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원천적 허무감이 바탕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도시문명 속에서 복잡다기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느낄 법한 공허함, 외로움, 뭔가 갈급함을 불교라는 최고선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불도를 문학이라는 붓으로 그려내었다.
소설집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품마다 오버랩 기법이 돋보인다. 현실적 생활상과 종교적 구원, 동양학에서 말하는 인간 미래의 예측과
기복의 구현 욕망이 번갈아 나오면서 힘차게 이야기는 서술된다.
단편 「영혼 사진관」에 나오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사홍서원은 네 가지 큰 서원을 말한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번뇌를 끊고,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선생의 소설 편편마다 불가(佛家)와 동양학적 배경이 등장한다. 불교와
동양학은 다른 것이고 종교와 학문이라는 점에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선생은 전공을 잘 살려 우리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타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종교적 차원에서 학문적 높이에서 다루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배경지식과 학문적 깊이로 소설을 끌어가는 선생의 저력은
대단하다 할 것이다. 호흡이 긴 작가의 능력으로 보아 『영혼 사진관』은 장편소설로 엮어도 주제의식을 더욱 고양시키리라 생각된다.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이책에 이어 영혼을 테마로 본격적인 글쓰기 수행을 쌓아가려고 한다’라고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생은
이미 영혼에 대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귀띔해주고 있다. 어렵고 힘든 길을 선생은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외로운 행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이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때는 독자들의 삶은 보다 진실되고, 행복해져 있을 것이다.
책 끝장에 ‘사랑의 마중물을 붓습니다. 그 무엇도 괘념치 마시옵고 나들이 하듯 가벼이 그렇게 나아오소서’란 글귀가 마음을 적신다. 나아
오시는 분은 과연 누구일까. 이 책을 접하면서 얻은 화두이다.
인간은 영혼의 소유자이면서도 영혼을 보지 못하기에 이 소설은 독자가 읽어 볼 만한 소설이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영혼 사진관에
들어서게 된다. 영혼 사진. 한번 찍어볼 만하지 않은가.(표중식 소설가)
- 목차
동창회 소묘(素描)
효도비
이별
여보를 구합니다
모정 3만리
어머니의 특별한 여름
아버지의 밤
영혼 사진관
한 가지 소원
- 변영희
<저서>
장편소설 3부작 『마흔 넷의 반란』 『황홀한 외출』 『오년 후』소설집[영혼사진관] [매지리에서 꿈꾸다] [입실파티]
수필집 『비오는 밤의 꽃다발』 『애인 없으세요?』 『문득 외로움이』외 다수
수상 ; 직지문학상. 한국문학인상. 무궁화문학상소설대상. 손소희소설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