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 펄 벅 여사/아시아경제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변영희 옮김
[에세이 오늘] 펄 벅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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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시골의 가난한 농부 왕룽이 황부자네 하녀 오란과 결혼한다. 오란은 박색에 말수가 적으나 지혜가 있었다. 왕룽은 오란을 맞은 뒤 운수가 대통했는지 연달아 풍년을 맞고, 모은 돈으로 황부자네 옥답도 산다. 마을에 기근이 들자 왕룽은 식솔을 이끌고 도시에 나가 인력거를 끈다. 정치가 혼란해져 부자들이 재물을 숨기고 달아난다. 오란이 그것들을 찾아낸다. 왕룽은 고향에 돌아가 농토를 사들이고 부자가 된다. 오란은 남편의 무관심 속에 살림만 할 뿐이다. 왕룽을 만나 배를 곯고 온갖 고생을 견디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눈물을 속으로 삼킨 오란. 남편이 첩까지 들이자 더는 견디기 어려웠을까. 큰아들을 장가 들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세월이 흘러 왕룽은 노인이 됐다. 장성한 아들들은 아버지가 힘들여 마련한 땅을 팔려 든다. 왕룽은 아들들에게 호소한다.
"땅을 팔기 시작하면 집안은 끝장이야."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뺏겨서는 안 된다…." "땅을 파는 날은 세상의 마지막이다."(동서문화사·홍사중 옮김)
미국 작가 펄 벅이 1931년에 발표한 '대지'의 줄거리다. 벅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들들(1933)' '분열된 집(1933)'과 함께 3부작을 이룬다. 1892년 6월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즈버러에서 태어난 벅은 선교사 부모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경험이 생생한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중국의 대지와 사람에 대한 벅의 지식과 통찰은 서양인 작가 중에 최고 수준이다. 1938년 노벨문학상 선고위원회는 추천문에 "중국 농부의 생활을 풍부하게,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썼다.
벅이 1963년에 발표한 소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는 한국이 배경이다. 구한말부터 1945년 광복되던 해까지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삶을 그렸다. 과도기의 한국 역사와 문화를 치밀한 고증 작업과 극적인 구성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여러 언론에서는 "'대지' 이후 최고의 걸작" "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벅은 1960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가을이었다. 경주에 갔을 때, 벅은 해질 무렵 지게와 소달구지에 볏단을 나눠 싣고 가는 농부를 보았다. 그는 농부에게 물었다. "힘이 들 텐데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나요?" 농부가 대답했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종일 일했지만 소도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 지고 가야지요." 벅은 훗날 이때의 일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기억했다. 벅은 한국을 사랑하여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후 여덟 번이나 한국을 다녀갔다. 1967년에는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부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을 건립했다. 전쟁고아와 보호자가 없는 혼혈인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3만3000㎡(1만평)를 기증했다. 희망원은 1975년까지 운영됐다. 1999년에 펄벅인터내셔널 한국지부, 곧 펄벅재단으로 바뀌었다.
벅은 1973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 2006년 9월30일 소사희망원 자리에 펄벅기념관이 들어섰다.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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