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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변영희

능엄주 2019. 12. 19. 21:51

밖에 나가기가 다소 무리라고 여겼다.

어제저녁에도 나갔으니 연속 찬 바람 쐬기는 지난 여름 독감으로 오래 고생한 터라 감기가 또 기습할까 겁이 났다.

일단 쉬자. 쉬고나서 가고 안가고를 결정하자. 그리 생각했다.


오후가 되어도 몸은 피곤해를 연발하며 게으름을 피운다.

신사동에서 만나기로 한 도반에게 전화를 할까. 가지 말자고. 혼자서 궁리를 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전화한 사람도 겨울밤엔 외출하기 싫다고 한다. 건강이 첫째라며 유난히 건강을 들먹인다.


15시가 되자 나는 슬슬 마음을 결정한다. 간다!

밖에 나가야 누구를 만나도 만나고 배우고 듣고 느낄 것이 있다. 

집에 앉아 책을 읽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정답이다 라고.


[불교평론 ]창간 20주년 기념식은 시작 전이었다. 지각하지 않고 알맞게 도착한 게 대견했다.아는 분들에게 분주히 인사를 나눈다.

오늘따라 책걸상 배치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마주보기였다. 오늘은 회비도 없다고 늦게 온 송정 씨가 말했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팥고물이 듬뿍 묻은  찰시루떡, 부침게, 치킨, 맥주와 오색 안주. 김밥, 연어회 등, 거하게 한 상 차려진 가운데 기념식 축하연은 막이 오른다.  평화와 안락을 위하여! 건배사도 힘찼다. 출판환경이 여의하지 못한 여건에서 20년을 이어온 [불교평론]에 대해 그간의 과정을 들었다. 고 무산스님의 지원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게되었다. 홍SS 주간의 필진筆陣, 편집위원님, 내빈소개도 멋졌다. 만해사상 선양회 - 선불선원  

2019년 송년회는 여법하게 진행되었다.


특별한 것은 기념 축하연이 끝날 무렵 내게 온 한 권의 책이었다.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 이었다. 전철안에서 더 참지 못하고 책을 펼쳤다. 끝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 바로 이거야! 이런 기분! 말로는 다 할 수 없을만큼  벅찬 감격이었다. 무산스님을 추억, 회고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무산스님의 숨결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진솔한 글이며 詩고 道요, 백담사 산바람에 실려온 무산스님의 부활이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 권의 책, 한 문장, 한 단어에서도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고 맑은 향훈이 감돌았다. 책 중에 책이었다.

무산스님은 열반하셨지만 만인의 영혼속에 항상 살아계시지 않는가.


오늘 저녁 외출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책을 들고 안방으로 건너방으로 왔다갔다 한다. 들고만 다녀도 흐뭇한 한 권의 책. 지장경 기도대신 무산스님의 흔적과 함께 밤을 지새도 좋으리라. 내 사는 이유가 여기 있을 진저! 감사했다. 佛恩이라면 이에서 더 무엇이 필요할까. 이 밤 나에게 유익한 시간, 행복한 시간이 도래한 것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