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과 교수님들과 중국 무이산에 다녀왔다. 5년 전에 갔다 온 곳이지만 그때 들르지 못한 곳이 있었고, 또 같은 전공을 하는 분들과 같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전에 가지 못했던 주자(朱子)의 묘를 찾아갈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주자의 묘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런지 올라가는, 습기 머금은 길에 이끼까지 끼어 있었다. 봉분은 물론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사성(莎城)까지 모두 강에서 주워온 돌로 남김없이 뒤덮여 있었다. 복건(福建) 지방은 모두 그렇게 묘를 만든다고 한다. 돌로 뒤덮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이 사상사의 거인이 잠들어 있는 무덤은 평범한 규모였다. 아니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기야 생전에 무슨 대단한 권세를 누린 것도 아니고, 충만한 부를 누린 것도 아니었으니, 학자다운 무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자학,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되다 그런데 지금 아마도 원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한, 저 돌무더기 안에 묻힌(아니, 묻혀 있었던) 사람이 1300년 이래 한반도 사람의 대뇌를 지배했던 사람인가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주자는 자신의 사상이 저 멀리 한반도에 전해져서, 한반도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신처럼 섬길 줄, 자신이 남긴 한마디 말도 의심하지 않은 채 금과옥조로 떠받들 줄 생각이나 했을까?
주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학문이 너무나도 깊고 넓은 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엄청난 저작의 양에 기가 질린다. 그가 주해한 『사서집주』 『시집전』 『초사집주』 등의 저작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주자대전』과 『주자어류』 등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한우충동이다. 또 그의 생각은 후대의 ‘주자학자’와는 달리 매우 균형 잡힌, 현실적 사고를 하고 있는 데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자의 학문과 사상은 분명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이 과연 모든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까? 주자의 학문은 인문학과 사회학, 경제학, 자연학을 포괄하는 거창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령은 윤리학에 있었다. 그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심성론도 따지고 들면, 그 목적은 사적 욕망을 절제하는 윤리적 인간의 완성에 있었다. 하지만 주자가 역설한 방법이 과연 성공적인 것이었을까? 인심과 도심(道心),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미발(未發)과 이발(已發), 독서와 정좌(靜坐)를 털끝처럼 따지지만, 그것으로 윤리적 인간이 완성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성공적이었다면, 왕양명도 이탁오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사족들은 주자, 혹은 주자학파의 주석을 단 사서삼경과 『주자대전』 『주자어류』를 얼음에 박 밀 듯이 읽고 외었다. 19세기가 되면, 중국조차도 주자 텍스트의 이해에 있어서 조선보다 나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주자학을 완벽하게 마스터했지만, 조선의 사족들이 과연 윤리적으로 완성된 인간들이었을까? 나는 결코 찬동할 수 없다. 아니, 주자학은 도리어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거룩한 말들이 실천되는 세상이 한 번이나 있었나? 주자의 무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배우고 있는), 아니 학교가 우리에게 가르친(가르치고 있는) 가치, 예컨대 민주주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 평화, 평등,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은 또 어떤가? 현실을 돌아보면 결코 머리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도리어 그 반대일 것이다. 가르침은 다만 힘없는 언어로 학교와 교과서 안에서만 겨우 존재할 뿐이고, 학교와 교과서 밖의 현실 속에서는 전혀 힘을 갖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실천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주희의 묘를 떠나 버스에 올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문득 거룩한 말들이 실천되는 세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게 인간 세상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희망을 갖자고 다짐하지만, 그 순간 그저 우울한 생각이 왈칵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