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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울 거야 - 양현당을 떠나며/ 변영희

능엄주 2019. 4. 30. 23:49

양현당에서 맞이한 계사년의 봄은 색 달랐다.

새벽 3시 풍욕을 알리는 방송으로 곤한 잠을 깬다. 양현당 뜨락 저 멀리 하늘가엔 별빛이 초롱하다.

새벽 달이 스러지고 무등산 자락을 넘어온 바람이 살 속에 파고드는 시간, 우리는 맵고 시린 새벽과 맞닥뜨린다.

 

아,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 하는구나. 기대반 불안감 반으로 졸린 눈을 비비고 창문을 열고 마루 문을 연다.

부시럭거리며 옆 자리의 다른 환우들도 부산히 풍욕을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거의 11가지 동작을 두 번 반복하노라면

건강회복의 기대와 희망으로 부푸는 자신을 보게 된다. 곧 이어서 냉 온욕 시간이다.

꾸물거릴 시간, 심신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목욕 준비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욕실로 향한다.

욕실 창 밖으로 부옇게 밝아오는 여명! 맑고 상큼한 공기! 전 같으면 잠자리에 묻혀 잠을 자고 있거나 TV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온탕 냉탕을 오가며 1시간 후에 욕실을 나온다.

 

따끈한 방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잠시 눕기는커녕 곧바로 해관海觀선생님 방으로 모이라는 전갈에 불현듯 아득한 심정이 되곤한다.

아! 너무 힘들어! 영 이건 아니올시다야! 잠시도 숨을 못돌리게 해!

눕고 싶고, 젖은 머리 말리고 싶고, 산야초 효소 한 잔 들이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각자 노트를 챙기고, 물병 하나 달랑 들고 

선생님 방에 집합, 그렇게 자연치유 실습과 건강강의 듣기를  한 달여.

 

양현당 민족생활교육원에서 알찬 건강 교육, 食衣住에 대한 제대로 된 강의를 들으며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던가를 반성한다.

바른 삶의 길잡이인 해관 선생님의 손짓 하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계사년 봄이 양현당에서 숨가쁘게 흘러가는 중에, 뜻밖의 수상 소식을 접한다. 중환인 恩佑때문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서울로 간다.

 

햇살 좋은 날, 이 방 저방에서 나온 환우들이 클로버 잔디 밭에 엎드려 막 올라오는 쑥을 캐거나, 매화향기 폴폴 날리는 율무밭에서 냉이를 캐던 일. 맑은 공기 들이쉬고 내쉬며  논길, 산길을 돌아 산책하던 일, 건강회복이라는 절체절명의 소원을 끌어안고 목숨 걸고 몰입했던 명상과 풍욕의 소중한 체험들. 때로는 딴 생각에 젖어 동작의 순서도 까먹고 옆 사람 동작을 흉내내던 것까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과격한 어투로 정부의 보건정책을 질타하는 해관 선생님의 서슬에 꼭 해야 할 질문 요지도 망각하고 선생님 눈빛을  묵묵히 바라보던 일. 점심 무렵 주방에서 새어나오는 오묘하고 맛깔스런 양념 냄새에 한 달여 단식한 오장이 뒤틀리는, 강렬한 음식에의 갈망을 억제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일 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새로움이고 유익함이었다. 무뚝뚝하고 종종 무서움을 끼치는 선생님의 속깊은 사랑이고 전라도 화순 산골 양현당의 값진 선물이었다.

 

분명 그 시절, 그 시간이 그리울 거야! 호랑이처럼 무섭기만 하던 해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거야!

다만 그곳에 두고 온 은우의 병세가 걱정인 채로 나는 하염없이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이미지 1:그리울 거야!(서울, 변영희)

 

 

이미지 2:그리울 거야!(서울, 변영희)

 

 

이미지 3:그리울 거야!(서울, 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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