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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돈의 힘, 인간의 저항/[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매일경제

능엄주 2019. 1. 13. 10:34

세상사는 이야기] 돈의 힘, 인간의 저항

       
매일경제
얼마 전 여러 지인들과 함께 돈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돈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뜻밖에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쏟아졌다. 말이 별로 없는 아주 얌전한 분도 돈에 대해서는 진솔한 그의 생각을 나누었다. 돈은 삶에 꼭 필요한 것이란 생각부터,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또 돈은 지극히 중립적이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 나 역시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소견을 내놓았다. 돈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데 긍정의 길보다는 부정의 방향으로 사람을 이끄는 힘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의 성공으로 큰돈을, 몇 년 안 되는 시기에 벌게 된 사람들 중 불행해진 이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었다.

로또의 행운을 차지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몇 년 가지 않아 빈털터리가 된다는 통계를 언급하면서 나의 말에 동의하신 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더 많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 번 돈벼락을 맞아봤으면 좋겠다고. 갑자기 생긴 큰돈으로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가끔 구입하게 되는 로또 티켓, 몇억 달러의 가능성을 가져다주는 작은 종이 한 장을 지갑 속에 넣고 그 많은 돈이 다, 한꺼번에 우리 계좌에 들어온다는 공상에 잠긴다. 액수에 따라 90%에서 95%를 한국 보육원 아이들을 돕는 야나 미니스트리에 기부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함께 가족이 되어 같이 사는 아이의 숫자를 현재 한 명에서 다섯 명, 여섯 명 이상으로 계속 높인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글 쓰는 것에만 열중하는 나의 일상을 꿈꾼다. 큰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100명 중 99명이 돈의 유혹으로 최고 갑질 챔피언이 된다 해도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돈의 혜택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줄 거란 결심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거라고 나 자신을 믿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런 나의 생각이 오만이며 오산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준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CBS의 김현정 앵커가 효암학원의 채현국 이사장님과 나눈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올해 85세가 되신 이사장님은 한때 석탄사업으로 아주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1970년에는 개인소득 전국 2위를 기록했고 다섯 번이나 10위 안에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24개 계열사를 모두 정리하고, 모은 돈을 정권의 부당함으로 고초를 받은 많은 분들을 비롯해 회사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교육자가 되셨단다.

돈은 필요할 뿐이지 좋은 것일 수는 없다고 이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가지면 남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돈이다. 또한 돈은 대단한 마약이라고도 하셨다. 밥은 실컷 먹으면 맛이 없어지지만 돈은 많을수록 더 매력이 있게 된다. 끝없는 마력으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결국 돈이 자신을 미치게 하는 것을 의식하고 그 마력에서 도피하기 위해 돈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설명하셨다.

돈에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돈 앞에서는 자신도 별 수 없는 약한 인간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거란 나의 자신감이 아주 우습게 느껴졌다. 인격이 훌륭한 그분도 별 수 없었다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가 왜 성경에 나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아주 큰돈을 갖게 되는 미래를 꿈꾸었었다. 이젠 로또 티켓을 사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하는 일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큰돈이 된다 해도 헤어나올 수 없는 산더미가 되기 전에 나누어줄 것이다. 혹 미쳐가는 나를 의식하고 도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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