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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기 감독 "태권브이는 내 아들이자 자존심"[/연합뉴스

능엄주 2018. 12. 9. 08:53

연합뉴스

김청기 감독 "태권브이는 내 아들이자 자존심"

입력 2018.12.09 06:00

"마징가Z를 우리 것으로 아는데 충격..우리 고전동화 만들고파"
태권브이와 함께 선 김청기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나는 항상 내 큰아들은 태권브이라고 이야기해. 둘째 아들은 똘이 장군이고, 셋째 아들은 우뢰매지. 큰아들은 내 자존심이야. 내 이름을 만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2010년대 어린이 대통령이 '뽀로로'라면 1970년대 어린이 대통령은 '태권브이'였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남산 공영주차장 4·5층에 '태권브이'를 추억하는 공간이 문을 열었다. '김청기 기념관 동심'이다.

태권브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청기(77) 감독을 9일 이곳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1997년 '의적 임꺽정'을 끝으로 작품활동을 접고 경북 문경으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한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기념관을 개관하자 김 감독은 태권브이 원화와 대본, 촬영기기 등 애지중지하던 소장품을 아낌없이 내놨다. 우리나라 로봇 애니메이션의 역사라는 생각에서다.

김 감독은 1970년대 아이들이 일본의 '마징가Z'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태권브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우리 아들이 네 다섯살 정도였는데 우리말로 더빙된 마징가를 우리 것으로 알고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극일 사상이 대단할 때였는데 얼마나 아이러니해. 그러다 일본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지 생각하니 아찔하더라고."

김청기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게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 김 감독은 이왕이면 디즈니 작품처럼 동작이 부드러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마징가'를 뛰어넘고 싶었고, '한국의 월트 디즈니'가 김 감독 꿈이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계 성현이야. 사실 나는 일본식 이야기 구성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무 잔인하거든. 어린이에게 보여줄 영화는 악당이라도 사악하게 그려서는 안 되고,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디즈니는 재미있지만 절대 잔인하지 않거든."

태권브이는 70·80년대 어린이의 슈퍼 히어로였지만 '마징가Z'를 모방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솔라 123', '혹성 로보트 선더 A', '스페이스 간담V' 등 그의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도 일본 작품 표절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김 감독도 '마징가Z'를 벤치마킹했고, 그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아류작'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한다.

김청기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마징가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지.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니까. 당시 흥행사들은 아예 제목에 '마징가'를 넣어서 '마징가 태권V'라고 하면 돈을 더 주겠다고 했어. '마징가'가 들어가야 성공한다는 거야.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는 못한다고 했어. 거기에 대해선 자부심이 있어. 아류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

태권브이는 1976년 첫 개봉 당시 엄청난 인파를 불러모으며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김 감독은 큰 빚을 져야 했다. 작품 질을 높이려는 욕심에 원화를 3만7천장이나 쓴 때문이었다. 애초 예산으로는 많아야 2만3천장 정도가 한계였다.

제작비가 배로 든 데다 당시 극장의 횡포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는 극장들 횡포가 관행이었어. 분명 관객이 3천500명씩 들어갔는데 1천200명으로 줄여버리는 거야. 도리없이 당하게 돼 있었어. 지금이야 전산화해서 관객 수가 다 뜨지만 그때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어."

태권브이로 진 빚은 둘째 아들 '똘이 장군'과 셋째 아들 '우뢰매'로 갚았다고 한다. 극장의 '갑질'에 당한 김 감독은 아예 극장 전체를 일주일씩 대관해 '똘이 장군'을 상영했고, '우뢰매'는 극장이 아닌 시민회관이나 문화회관에서 개봉했다. 덕분에 김 감독은 경제적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김청기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감독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 고전동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이야기와 캐릭터, 우리의 색감과 음악 이런 것이 세계적인 것이잖아. 전 세계 어린이가 맨날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만 볼 수는 없지. 우리 고전동화도 참 재미있는 게 많은데 업계에서는 진부하다고 생각해. 만일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디즈니가 '심청'을 만들어봐. 그럼 디즈니 것이 되고 말아."

김 감독은 이미 10년 전 '심청' 스토리보드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를 들고 여러 업체를 찾았지만, 흥미를 보이는 곳이 없었다.

"내년부터 다시 여기저기 가보려고 해. 국회도 한번 가볼 생각이야. 고전동화는 우리 문화유산이잖아. 내가 지팡이 짚기 전에 '심청전', '흥부전', '별주부전' 이 세 가지는 꼭 만들고 싶어."

kind3@yna.co.kr


출처 : 다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