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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변문원

능엄주 2017. 5. 5. 19:57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이어령은 자신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특징을 구석구석까지 밝게 조명하여 날카롭고 정확하게 또한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


일본인은 무슨 물건이든 간에 조그마하게 축소하는 속성을 가진 민족이다. 예를 들면 하이쿠, 나무도시락, 석정(石庭), 분재, 트랜지스터, 전자식 탁상계산기 등의 축소지향이야말로 일본을 공업사회의 거인으로 밀어 올려 경제대국을 이룩하게 하였다.


망요슈(萬葉集)의 장가(長歌)가 단가(短歌)의 31자가 되고, 다시 하이쿠의 17자가 되는가 하면, 밥상을 줄여서 이동하면서 먹는 벤또로 만들고, 쥘 부채며, 꺾어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우산이며, 라디오를 정교한 트랜지스터로 만들어 자원이라고는 귤과 온천뿐인 일본의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작은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아름답다’고 말한 세이쇼 나공(淸少納言) 이래의 일본 문화의 기본적인 흐름을 이어령 교수의 독특한 필치와 해학적 표현으로 ‘축소(縮小)’라는 한 마디에 집약 함축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본인들은 가까이 있는 것, 손에 잡히는 것. 살에 닿는 것을 잘하는, 오므림 즉 축소지향에서는 두드러지지만, 일단 자기 나라 밖의 넓은 공간에 나가면 판단 능력을 잃고 의식구조도 행동양태도 돌변해서 그들은 왜구 혹은 귀신이 되고 만다. 이것은 바로 일본인들이 말하는 귀신은 오또(밖으로), 복은 우찌(안으로)라는 말과 함께 일본인들의 인색하고 이기적인 세계관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라고 해봐야 그것은 ‘안’의 ‘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뿐이다. 그 일례로써 동남아시아나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일본의 단체 관광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어령은 일본인의 축소지향을 ① 고메루(밀어 넣는다) ② 요세루(끌어 모은다) ③ 게즈루(깎아 낸다) ④ 쯔메루(채워 넣는다) ⑤ 가메에루(자세를 취한다) ⑥ 니기루(응결시킨다) 등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일본인의 세계관과 일본 문화의 구조를 지극히 평이하고 위트에 넘친 어조로 설명,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도 결코 이 책이 감정적 반일론은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유머와 풍자, 그 배후에는 어린 시절 일본군의 강제 침략으로 말미암아 강제로 일본어를 배운 저자의 애증과 항의의 감정이 숨겨져 있어 그만큼 흥미가 깊은 책이기도 하다.

축소는 극대(極大)를 극소(極小)로 수렴하는 것인 만큼 그 속에는 세계 정복의 공격적인 야심이 포함되어 있는 형태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사기(古事記)에서 인용한 가라노(枯野)라는 배(船)의 에피소드는 감명이 깊다.


‘이 세상에 토노키 강 서쪽에 높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그림자는 아침 해가 비치면 아와지 섬까지 이르고, 석양이 비치면 가와치의 다카야스 산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었더니 매우 빠른 배가 되었습니다. 그 배 이름을 가라노라고 했습니다. 이 배로 아침저녁 아와지 섬의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썼습니다. 이 배가 부서진 다음 그 재목으로 소금을 굽고, 그 타다 남은 나무로 고도(琴)-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를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온 나라로 울려 퍼졌습니다.’


거대한 나무가 배가 되고, 그것이 다시 고도가 되어 점점 축소되어 가면서 그와는 반대로 보다 넓은 세계에 그 힘이 미치게 된다는 이 ‘가라노’에서처럼 축소시키기 위해서 더욱 그 테두리가 넓어져야 하는데, 일본의 의식은 세토 나이카이(瀨戶內海)의 바다에 둘러 싸여 태평양 일곱 바다로는 퍼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국제적인 시민의식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으며, 단지 그 배가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바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달러를 길어오는 배, 상업주의적인 배의 문화를 부수고 태워서 물건을 만드는 차원-그 상품 자체가 달라지는 새로운 축소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가라노의 소금과 고도인 것이라고 저자는 강변한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문명의 배가 부서져 해체되어 그것을 태운 재에서 다시 탄생하는 그 어떤 것, ‘죽음의 재’가 아니라 고목의 가지에 꽃을 피우는 하나사카지지의 재와 같은 것, 거친 바닷물이 생명의 소금으로 결정되어 번쩍이는 것, 또 물질문명의 배가 타버린 자리에서 만들어진 고도(琴), 그러나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온누리(七鄕)에, 7대양(七大洋)의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저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일깨운다.

일본은 세계 시장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세계를 정신의 시장으로 생각하고 사랑이라는 상품, 생명이라는 상품,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의 상품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침몰(日本 沈沒>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지금 그것은 인류의 증언이 아니라 일본인만의 위기다. 번영도 일본인만의 번영이었기 때문에 침몰도 일본인만의 것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일본인에게서는 인류와 함께 공존하고 번영하는 국제 감각을 찾기 힘들다고 술회한다.


칼과 주판이 아닌 고도와 같은 악기, 같은 쇠를 가지고 일본이 일본도를 만들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잘 울리는 에밀레종을 만들었다. 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그늘에서 반드시 그 칼에 누군가 잘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주판으로 돈을 버는 역사에는 반드시 빼앗기고 손해를 본 사람의 눈물과 배고픔이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에밀레종은 아무 것도 빼앗지 않는 대신 그 울림은 오직 생명 같은 감동을 줄 뿐이다.


이어령은 또 테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여 이 지구상의 기아지대, 하나는 아프리카이며 또 하나는 일본으로서 전자는 물질적 기아요, 후자는 정신적 기아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칼과 주판만으로 역사를 지배한 것은 일본의 비극이었다. 이제는 군사대국, 경제대국이 아니라 문화대국의 새 차원으로 역사를 이끌어가야만 확대지향도 제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더 커지고 싶으면,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도깨비(鬼)가 되지 말고 난쟁이(一寸法師)가 되라. 배를 태워 고도를 만들라. 그 소리가 7대양에 울려 퍼지도록……’


이어령이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일본인의 의식과 문화의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 분석한 것은 일본의 ‘확대’로 말미암아 고초를 겪은 이웃나라 한국인의 항변이며 충언이기도 하다.


일본 국기는 단순화에 특징이 있고, 일본 인형은 손발이 생략돼 있는 등, 발명은 미국이 하고 상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휩쓴 것은 일본이라는 것, 안보(安保)에만 무임승차한 것이 아니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쟁을 틈타서 오히려 돈을 번 것이 일본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조경 솜씨를 자랑하고 가미다나(神木朋))을 만든 일본이지만 ‘잔모래가 바위가 되도록’이라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처럼 그들이 거대주의를 지향할 때는 판단력을 잃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침략이나 한일합방, 2차 대전 때의 만주 침략, 오늘날과 같은 세계 시장의 정복, 무역마찰로 나타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어령의 해박한 지식과 문학적 표현, 진실에 근거한 명쾌하고 풍부한 사례로 말미암아 일본인들의 자기 인식과 의식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믿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