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

이곳 토지문화관의 눈에 보이는 모든 식물들이 서울 근교의 것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부모님 사랑 듬뿍 받고 자라는 아기같이 그 푸른 빛하며 튼실한 줄기와 꽃모양이 확연히 비교가 된다.
아카시꽃 향기가 사라졌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지금 이곳엔 들장미와 아카시꽃 향기가 온 천지에 가득하다.
옥수수는 키가 쑥쑥 자라오르고, 감자며 고추가 깜작 놀랄만큼 성장속도가 빠른 것 같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그렁그렁 물이 차 있고 상추며 시금치 취나물 두릅나물도 산책길에서 지천으로 만난다.
회촌교를 지나 마을로 올라가는 길 좌우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예쁜 집들이 여러 동 들어서 있어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사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집 앞에는 맑은 개울물이 돌돌 흘러가고 탐스런 불두화꽃이 전원주택에서 제철 만난 듯 함빡 웃고 있다.
한적하고 고요한 일상에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에게 내가 대접할 것이라곤 아침에 식빵을 구워먹으러 식당에 올라갔다가 큰맘 먹고 가져온 인스탄트 커피 두 봉지가 고작이었다.
내 방의 소형 냉장고에는 토요 일요일을 위한 비상식량으로 달랑 햇반 몇 개가 있을 뿐이다. 집에서 떠나올 때 노트북이 내 체력이 하도 무거워서 멸치볶음이며 김부각, 장아찌 종류들을 무겁다는 이유로 다 빼놓을 때 간식거리도 몽땅 내려놓고 온 때문이었다.
친구가 들고온 가방에선 떡 벌어지게 상을 차려도 좋을 만큼 온갖 먹을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약식 쑥개떡 호박떡 군고구마 삶은 계란 유부초밥 김밥 매실장아찌와 멸치볶음 등등.
"아니 이게 다 뭐야? "
내가 토지문화관에 입주한 그 이튿날이 공휴일이어서 종일 강냉이 한 보시기와 돌김에 잣만 싸서 5끼니를 떼웠다고 했더니
그 얘기를 들은 것인가?
나는 다른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와서 즉각 답을 보낸 일이 있다.
"좋은 데는 다 다니네! 좋은 글 많이 쓰고 와라!' 를 받자마자 나는
"좋은 데 와서 배가 고프다! 비는 온종일 주룩주룩 쏟아지고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나는 지금 6.25을 만났어!"
라고 했던 것이다..
돌김에 잣이 얼마나 영양가도 많고 든든한지 안 먹어보면 모를 걸 하면서 장난섞어 과장표현을 했던 것인데
난데없이 이 친구가 용인에서 버스 타고 원주에서 또 시외버스 갈아타고 먹이를 잔뜩 짊어지고 나에게 오다니.
나는 장편소설이고 단편소설이고 돌아볼 정신이 없었다. 낮 1시가 거의 다 되어 친구는 덥고 배고프고 할 터인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금방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너 배고프지? 어휴 내가 언제부터 너한테 밥 한 번 거하게 해줄려고 했는데 그걸 여태 실행에 못 옮겼잖아 어서 먹어!"
감동 잘하는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친구 성화에 유부초밥과 쑥개떡을 집어 먹으며 영 기분이 야릇했다. 야릇이 아니라 콧마루가 시큰거렸다.
"무거운 걸 짊어지고 여기 올 생각을 다 했어?"
내 방의 소형 냉장고에는 뒤져봐야 더 나올 것이 없었다.
나는 친구를 데리고 고 박경리 선생님 박물관-유품이 전시돼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도서관이며 세미나실, 김지하 선생님 서재와 뒤란의 야외 무대 언저리에 피어난 붓꽃을 보여 주었다.
먼길 찾아 온 친구에게 줄 것은 그것 밖에 없었다. 친구는 부지런히 셧터를 눌러댔다.
귀래관 앞 연못가에 이제 막 피어난 모란꽃도 찍고 시간이 아까워 제대로 잠을 못잔 내 꺼실한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내 일에 방해 된다며 친구는 빈 도시락을 챙겼다. 친구를 그냥 보낼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시외버스 터미널가는데 흥업까지만 태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용기를 내서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고 있을 때 길가의 하얀 민들레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얼른 하얀 민들레를 꺾어 친구에게 주었다.
승용차가 출발했다. 생면부지의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 준 승용차 아저씨가 나는 고마웠다.
하얀 민들레 한 포기도 고마웠다.
친구를 태운 차가 매지리 종점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차가 사라져간 큰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