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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

능엄주 2022. 3. 30. 14:17

너무 힘들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교정 보는 중에 돌연 글자가 王 글자로 변해? 처음부터 11폰트로 썼고 지금 전체 쪽수를 대거 축소하기위해 수정 중인데 대체 무슨 변고야? 이 일을 어찌해야 해? 상단에는 11로 분명히 글자 크기가 그대로인데 이건 30폰트도 넘어 보인다. 수정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였다. 왕글자는 삭제도 안되고 요지부동이다. 나는 겁이 와락났다.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지난해 랜섬웨어에 감염돼 컴 기술자가 방문했다. 그는 랜섬웨어 범인들이 미화 2445불을 송금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놈들은 빠른 해결을 원하는 나를 더욱 겁나게 했다. 2445불을 송금하면 일이 해결된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놈들과  가격을 놓고 통화하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놈들이 요구하는 미화를 한 번 송금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컴 기술자가 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화가 아닌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비트코인으로 송금하려해도 비트코인  가격이 수시로 변동될 수있다고 했다.  그 가격에 맞춰 송금한다고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다른 요구가 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컴퓨터의 모든 자료들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컴퓨터에 달걀귀신이 들어앉은 것 같았다. 나 어릴 때 꿈 속에서 우리집 뒤꼍 목욕탕 지붕으로, 뭉글뭉글 퍼지면서 몸체를 불려가던 공포의 달걀귀신.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지인이 소개해준 컴 기술자는 곤경에 처한 나에게 거의 위협적으로 말했다. 놈들에게  2445불을 송금할 것이냐?  컴퓨터를 새로 구입할 것이냐? 빨리 결정하라고 종조목을 대듯이 몰아갔다. 하는 수없이 놈들과 타협을 중지하고 수년 째 사용해오던 컴퓨터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슴이 쓰렸다.

 

늘 단골로 컴을 봐주던 우리 동네 컴 아저씨가 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전화를 수차례 했는데 그는 월요일에나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얗게 죽어 있는 컴퓨터를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두고 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지인이 소개해준 컴기술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컴을 새로 설치했다. 그게 불과 얼마전이었다. 수년 간 써놓은 모든 글들이 사라졌고, 나는 그후부터 컴 앞에 앉기가 몹시 두려웠다. 지인이 소개해준 컴 기술자도, 해킹이 범람하는 세상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나는 또 메일을 해킹당했다. 놈들이 이번에는 돌아가신지 수십년이 넘는 '내 어머니가 코로나19에 걸렸고, 그 위에 신부전으로 급히 신장이 필요하다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메일 발신자는 나로 되어 있었다. 수신자도 나였다. 어투나 단어 사용이 한눈에 보아도 해킹인 줄 알수 있었을텐데,  소설쓰는 어떤 여자는 그 메일을 받자마자 그 놈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자세한 걸 알고 싶다고 했다나.  그 여자는 지 단톡방에 그 메일을 올려 마치 메일의 발신자가 나인 것처럼, 내가 돈달라고 구걸한 것처럼 단체에 진실을 호도, 광고해서 동네방네 내 이름을 퍼날랐다.

 

그래저래 나는 이렇게 글자 크기가 王 만하게 확장되어진 것에 대해 겁이 날밖에. 컴을 잘 다루지 못한 실책이겠지만 나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컴을 닫았다. 심장이 마구 쿵덕거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컴퓨터 스트레스로, 머리꼭지에 열이 치솟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집밖으로 도망가고 싶다. 이 무슨 고생인가. 이 무슨 형벌인가 싶다. 꼭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끓는다.

 

故 박완서 선생님 말씀처럼 문운도 중요하지만, 재운도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반드시 상을 타려고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항상 만만치만은 않다. 83년 가을 박 완서 선생님은 YWCA 대강당에 몰려온 수백 명의 시인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이 많은 인원이 모두 소설가가 되고 시인이 될 수없다고 하셨다. 소설가 시인도 좋지만 우선 각 일간지에 여성의 창이라는, 독자가 투고할 수있는 란欄에 열심히 투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 없이 가정에 민주화 없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당시 보바르여사의 비관론적인 여성의 일생을 그린  [제2의 성]을 생각했다. 보봐르 여사는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손해보는 인생' 이라고 설파했다.

 

며칠 전 지방에 사는 작가가 전화했다. 근래 글을 안 쓰니 밥이 달고 잠이 달다고. 글쓰기 안하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무슨 한가로운 투정인가. 그는 부동산 투기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고액 납세자다. 현 정부 초기에 강남에 산 아파트가 현재 수십억대로 불어나 그의 글쓰기는 다만 여가선용인가. 명예를 위함인가, 그의 부요와 자산 자랑은 가난한 동료들의 선망이기도 했다. 그가 뜬금없이 전화해서 글쓰기 대신 종일 TV 보고 음악 들으며,  맛난 것 해먹고 산책하고 그렇게 지내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편안이 뭔지 행복이 뭔지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죽기까지 글을 쓰다가 책상에서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는 예감뿐이다. 삶의 완성을 위하여? 그거 아닌 것 같다. 완성이란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다. 팔자고 운명이고 일종의 지중한 업보의 화살을 맞은 것이라고 여긴다.

 

서포 선생은 최고의 벼슬을 사직하고, 아니 아예 벼슬 명부에서조차 자신의 이름을 빼버리라고 임금에게 간절히 탄원歎願했다. 오로지 어머니 윤 부인을 모시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했다. 만종萬種의 고위관직으로 명성과 부요를 누리기보다 평범한 삶, 온 가족이 다 함께 향촌에 모여 사람스럽게 살고저 했다. 바로 이거 아닐까. 삶은 서로 어울려서야 편안하고 안정되어 힘을 얻는다. 삶 전체를 어느 한 곳에 몽땅 꿀어박는 것은 한계가 있다.  때로 느긋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여유를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개나리꽃 활짝 핀 대학로를 지나 4,5년 간 분주히 오가던 혜화동 로타리를 걸어볼까. 아니면 KTX 를 타고 남녘으로 달려가볼까. 오직 나 혼자서. 너무 힘들어 나는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