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깊은 겨울
능엄주
2016. 1. 22. 09:25
대청호 주변의 산과 들에 흰눈이 쌓여
높아서 산이고 낮아서 들판인 것만 구분이 되던 그 해 겨울,
바람이 불면 벌판과 산 위에서 눈가루가 꽃 잎처럼 마구 흩날렸다.
그것들은 겨울 햇살에 반빡반짝 빛나면서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한 참 후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했다.
바람이 지구 밖으로 밀고 간 것인지, 하늘에 유유히 떠 도는 구름이 삼킨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꽃잎처럼 비화하는 눈 가루는 하루 종일 멈출 줄을 몰랐다.
어쩌다 눈가루가 얼굴에 닿는다거나 손등을 스칠 때 써늘하면서도 상쾌한 촉감은 겨울이 주는 작은 선물 같은 것이었을까.
지극히 짧은 한 순간에 그치고 마는 촉감이면서도 그 황홀함, 상쾌감은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다.
한 낮에 먹이사냥을 나온 살쾡이가 울고 지나가고, 여우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땔감을 구하러 산에 오른 사람들을 위협했지만
눈 쌓인 산야는 이내 태고의 고요 속에 잠긴다. 일체의 동작과 소리를 흰눈 속에 묻고 자연은 본시 그 상태로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깊은 겨울.
겨울은 사색의 계절, 내면으로 더 깊숙히 침잠하여 자아를 숙성시키는 시간!
연일 영하 10도를 상회하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깊은 겨울의 한 복판에서 대청호의 설경을 떠올리며 봄을 기다린다.
봄날의 눈부신 햇살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