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남성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아내의 역사 추적한 역사학자이자 여성주의 작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결혼식에는 결혼(혼인)서약이 등장한다. 요즘 들어 개성 있는 서약서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중심 부분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나 ○○○는 오늘부터 ○○○를 아내로 (남편으로) 맞아들여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 혼인서약문은 1552년 만들어진 영국 국교회 기도서에 수록된 내용이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서약문 내용엔 지금과 다른 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내가 읽는 부분에 한 문장이 더 있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남편의 뜻에 복종하겠습니다"였다. 당시 아내에게는 남편과 달리 복종의 의무가 추가돼 있었던 것이다.
역사학자이자 여성주의 작가인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를 보면 아내는 '남자들의 발명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자들이 욕망을 충족하고, 대를 잇고, 가사와 양육에 부려 먹기 위해 '아내'를 발명해낸 것이다.
옐롬의 책에는 아픔으로 얼룩진 아내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고대 그리스만 해도 아내는 일종의 집사에 불과했다. 남편에게는 아내 이외에도 많은 성적 파트너가 있었기 때문에 아내들은 사랑받는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후손을 낳고 살림을 관리하는 집사에 불과했다. 이 같은 관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물론 중세를 지나면서 '사랑'이 중요한 결혼의 조건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서구에서 근대적인 결혼관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초반으로 보는 게 맞는다. 이 무렵부터 문학작품 속에서 사랑과 결혼이 동일 선상에 놓이고, 젊은이들이 부모가 정해준 파트너를 거부하는 사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옐롬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부모의 권위와 이에 대한 젊은 연인들의 도전이 빚어내는 갈등에 천착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에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되는가? 이야기의 무대가 시칠리아든 보헤미아든 간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당대인들의 결혼관 변화를 보여준다."
그래도 획기적인 변화는 요원했다. 18세기 미국 신문광고를 보면 가출한 아내를 찾는 광고가 탈출한 노예, 도망간 하인들, 잃어버린 말을 찾는 광고와 나란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지위가 결정적으로 진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피임술이 발달하면서부터였다. 임신이 피할 수 있는 일이 되면서 여성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아내의 지위를 높인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계기가 됐다. 1·2차 세계대전으로 남편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농사 건축 광산 공장 운전 등 남편이 하던 일들을 여자들이 담당하면서 아내의 지위는 급상승했다. 남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