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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2/ 변영희 글

능엄주 2022. 2. 26. 15:01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2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문명의 배가 부서져 해체되어 그것을 태운 재에서 다시 탄생하는 그 어떤 것, '죽음의 재'가 아니라 고목의 가지에 꽃을 피우는 하나사카지지의 재와 같은 것, 거친 바닷물이 생명의 소금으로 결정되어 번쩍이는 것, 또 물질문명의 배가 타버린 자리에서 만들어진 고도(琴), 그러나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온누리(七鄕)에, 7대양(七大洋)의 구석 구석에 울려 퍼지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저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일깨운다.

 

 일본은 세계 시장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세계를 정신의 시장으로 생각하고 사랑이라는 상품, 생명이라는 상품,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의 상품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침몰(日本沈沒)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지금 그것은 인류의 증언이 아니라 일본인만의 위기다. 번영도 일본인만의 번영이었기 때문에 침몰도 일본인만의 것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일본인에게서는 인류와 함께 공존하고 번영하는 국제 감각을 찾기 힘들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칼과 주판이 아닌 고도와 같은 악기, 같은 쇠를 가지고 일본이 일본도를 만들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잘 울리는 에밀레종을 만들었다. 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그늘에는 반드시 그 칼에 누군가 잘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주판으로 돈을 버는 역사에는 반드시 빼앗기고 손해를 본 사람의 눈물과 배고픔이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에밀레종은 아무 것도 빼앗지 않은 대신 그 울림은 오직 생명같은 감동을 줄 뿐이다. 종(鐘)이나 고도에는 어울리는 웅합이 있다고 말한다.

 

이어령은 또 데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여 이 지구상의 기아지대, 하나는 아프리카이며 또 하나는 일본으로서 전자는 물질적 기아요, 후자는 정신적 기아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칼과 주판만으로 역사를 지배한 것은 일본의 비극이었다. 이제는 군사대국, 경제대국이 아니라 문화대국의 새 차원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야만 확대지향도 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 더 커지고 싶으면,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도깨비(鬼)가 되지 말고, 난쟁이(一寸法師)가 되라. 배를 태워 고도를 만들라. 그 소리가 7대양에 울려 퍼지도록.'

이어령이 '축소지향'이라는 키 워드를 사용하여 일본인의 의식과 문화의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 분석한 것은 일본의 '확대'로 말미암아 고초를 겪은 이웃 나라 한국인의 항변이며 충언(忠言)이기도 하다.

 

일본 국기는 단순화에 특징이 있고, 일본 인형은 손발이 생략돼 있는 등, 발명은 미국이 하고 상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휩쓴 것은 일본이라는것, 안보(安保)에만 무임승차한 것이 아니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쟁을 틈타서 오히려 돈을 번 것이 일본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조경 솜씨를 자랑하고 가미다나(神木朋)를 만든 일본이지만 '잔 모래가 바위가 되도록' 이라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처럼 그들이 거대주의를 지향할 때는 판단력을 잃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침략이나 한일합방, 2차 세계 대전 때의 만주 침략, 오늘 날과 같은 세계 시장의 정복, 무역마찰로 나타난다고 비판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어령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우아한 수사적 표현, 진실에 근거한 명쾌하고 풍부한 사례로 말미암아 일본인들 대부분이 자기 인식과 의식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