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1/변영희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1
이어령은 자신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 문화의 특징을 구석구석까지 밝게 조명하여 날카롭고 정확하게 또한 당당하게 펼치고있다. 일본인은 무슨 물건이든 간에 조그마하게 축소하고마는 속성을 가진 민족이다. 예를 들어 하이꾸(俳句), 나무도시락, 석정(石庭), 분재, 트랜지스터, 전자식 탁상시계 등의 축소지향이야말로 일본을 공업사회의 거인으로 밀어 올려 경제대국을 이룩하게 하였다.
망요슈(萬葉集)이 장가(長歌)가 단가(短歌)의 31자가 되고, 다시 하이꾸의 17자가 되는가 하면, 밥상을 줄여서 이동하면서 먹는 벤또로 만들고, 쥘 부채며, 꺾어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우산이며, 라디오를 정교한 트랜지스터로 만들어 자원이라고는 귤과 온천뿐인 일본의 제품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작은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아름답다'고 말한 세이쇼나공(凊少納言) 이래의 일본문화의 기본적인 흐름을 이어령 교수의 독특한 필치와 해학적 표현으로 '축소(縮小)라는 한 마디에 집약 함축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본인들은 가까이 있는 것, 손에 잡히는 것, 살에 닿는 것을 잘 하는, 오므림 즉 축소지향에서는 두드러지지만 일단 자기 나라 밖의 넓은 공간에 나가면 판단 능력을 잃고 의식구조도 행동 양태도 돌변해서 그들은 왜구, 혹은 귀신이 되고 만다. 이것은 바로 일본인들이 말하는 귀신은 오또(밖으로), 복은 우찌(안으로)라는 말과 함께 일본인들의 인색하고 이기적인 세계관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라고 해봐야 그것은 '안'의 '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뿐이다. 일례로써 동남아시아나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일본의 단체관광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어령은 일본인의 축소지향을 1. 고메루(밀어넣는다) 2. 요세루(끌어 모은다) 3. 게즈루(깎아낸다) 4. 쯔메루(채워 넣는다) 5. 가메에루(자세를 취한다) 6. 니기루(응결시킨다) 등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일본인의 세계관과 일본 문화의 구조를 지극히 평이하고 위트에 넘친 어조로 설명,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도 결코 이 책이 감정적 반일론은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유머와 풍자, 그 배후엔 어린 시절 일본군의 강제 침략으로 말미암아 강제로 일본어를 배운 저자의 애증과 항의의 감정이 숨겨져 있어 그만큼 흥미가 깊은 책이기도 하다.
축소는 극대(極大)를 극소(極小)로 수렴하는 것인 만큼, 그 속에는 세계 정복의 공격적인 야심이 포함되어 있는 형태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사기(古事記)에서 인용한 가라노(枯野)라는 배의 에피소드는 감명이 깊다.
' 이 세상에 토노키 강 서쪽에 높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그림자는 아침 해가 비치면 아와지 섬까지 이르고, 석양이 비치면 가와치의 다카야스 산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었더니 매우 빠른 배가 되었습니다. 그 배 이름을 가라노라고 했습니다. 이 배로 아침 저녁 아와지 섬의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썼습니다. 이 배가 부서진 다음 그 재목으로 소금을 굽고, 그 타다 남은 나무로 고도(琴) -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를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온 나라로 울려 퍼졌습니다.'
거대한 나무가 배가 되고, 그것이 다시 고도가 되어 점점 축소되어 가면서 그와는 반대로 보다 넓은 세계에 그 힘이 미치게 된다는 이 '가라노' 에서처럼 축소시키기 위해서 더욱 그 테두리가 넓어져야 하는데, 일본의 의식은 세토 나이카이(瀨戶內海)의 바다에 둘러 싸여 태평양 일곱 바다로는 퍼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국제적인 시민 의식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으며, 단지 그 배가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바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달러(弗)를 길어오는 배, 상업주의적인 배의 문화를 부수고 태워서 물건을 만드는 차원 - 그 상품 자체가 새로운 축소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가라노'의 소금과 고도인 것이다' 라고 저자는 강변한다.(이어령의 [축소지향 일본인]을 읽고 2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