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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앉으면

능엄주 2022. 2. 19. 20:43

한 번 앉으면

 

새벽에 일어나면 곧 바로 책상으로 나온다. 기도 빼고는 대부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히 앉아만 있다 일어나기 일수다. 메일이나 뉴스를 보기도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책상에 앉을 때는 다른 뜻이 있다. 그 뜻을 십이분 펴지 못한 채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시간이 흘러가도록 보고만 있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한 번 앉으면 밥도 잊어버린다. 세수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 못하고, 무엇엔가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아름답게 불탈 때는 가슴 쓰리게 각성한다.

'한 번 앉으면' 이게 매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책상에 다가 앉기가 어렵다는 거다. 어떤 때는 겁도 난다. 앉 지 않으면 그만이지 무슨 겁이 나느냐고 혹자는 말할 지도 모른다. 책상은 나에게 일터이면서 족쇄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서 밤 새우기를 밥먹듯, 그렇다. 그 공부가 지금 나에게 약이 되고 밑천이 되고 있다. 배우고 글쓰는게 나의 일이고 죽기까지 계속할 터인데 이즈음 책상에 앉기가 이처럼 괴롭게 여겨지니 그게 탈이다.

 

진종일 적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어 보라. 물론 일한 보람, 기쁨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노고의 여파가 만만치 않다. 눈이 오려는가. 섬에서 절벽을 오르다 먼저 올라간 선장이 내  손을 놓아 괴상한 자세로 엎으러진 후부터 매일 같이 정형외과와 한방 치료를 받아도 여태 팔이 찢어지듯 아프다. 골머리는 왜 깨지게 아픈지. 게다가 20여 년 전 빙판에 넘어져 흐린 날이면 잊지 않고 통증을 호소했다. 창밖에는 눈발이 장난하듯 날리고 있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 심한 날 나는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저리고 애린 팔과 손목에는 붕대를 칭칭 감아준다.

 

언제나 오른손이 일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왼손이 저혼자 한가로움을 누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른손 못지 않게 움직인다. 움직이기는해도 아프다고 호소한다. 오른손보다 훨씬 더 수고로운 게 왼손이다. 나는 왼손에게 할말이 없다.  내 잘못이니까. 혹한에 빙판이 된 산사를 왜 갔는가. 중생살이의 고달픔이 그 겨울 나를 830M의 산사로 몰고 갔던가. 부처님 가피가 그날 밤 나에게 임하지 않았던가. 부처님 가피 대신 빙판이 된 산에 마귀의 화살이 날아왔던가. 그 왼손을 거푸 다쳤으니 나는 왼손에게 할말이 없다. 다만 책상에서 물러나 쉬어줄밖에는.

 

어찌 손목뿐이랴. 목, 어깨, 허리, 더구나 두 눈은 말할 여지도 없다. 나는 솔직이 이 무슨 업보인가 싶을 때가 많다.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밤까지 이어지는 이 작업이 끝내 나를 어디로 내몰 것인가 궁금하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이르렀는가?

오늘밤 꿈속에서 耕언니가 출현하면 물어보고 싶다. 언니는 왜 나에게 신神과도 같이 그처럼 우럴어보였던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