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전자책
지금 보고 있는 이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면 얼마간 나에게 시간이 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하여 지지난해 강원도 원주에서 쓴 [매지리 연가] 두어 권, 그리고 지난 해 남해에서 써 놓은 [노도 일기]. 힘이 닿으면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부터 줄창 써 내려간 수필까지 모두 전자책으로 출간할 뜻을 갖고 있다.
왜 전자책이냐? 지난해 봄, 우리집은 곧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짐 저 짐, 짐이 하 많아도 책 짐처럼 무겁고 힘든, 게다가 시원하다고 베란다에 내놓은 책들은 먼지보다 더 작은 책벌레가 발생해서 더 오래 간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 번 읽었으면 되었다 싶은 책들, 연속 새로운 출판물이 넘치고 있으므로,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의 책을 중고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을 물색하여 그냥 내주었다.
그 짐이 자그마치 스물 세 상자였다. 상자도 상자 나름이다. 내 책의 상자는 대부분 어디로부터 그 상자들이 우리집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대형의 영자 글씨가 있는 튼튼한 상자였다. 추럭을 몰고 온 그사람은 내가 구별해 놓은 책 짐을 다 싣고 가면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나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섬에서 귀가하고 보니 또다시 베란다. 안방, 건너방, 거실 전면에 앉을 자리도 없이 각종 책이 또 꽉 찼다. 책은 읽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먼지 뒤집어쓰고, 옹색한 아파트에 자리 차지하고 언제까지나 나의 공간을 장악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영구보존 용은 따로 보관한다해도 그것도 나중 보게 되는 경우가 매우 희박하다. 어쩌면 요즘 흔해빠진 각종 물건처럼 책도 일회용, 소모성, 집안 전체의 기를 누르듯, 이렇게 한없이 무작정 쌓여 있어서는 안되는 것같다.
지난날 신촌 살 때에도 나는 많이 고민했다. 내 책장에는 耕언니가 서대문 큰집에서부터 끌고 나온 현대문학이며 사상계를 비롯 세계문학전집 등등, 각종 서책들이 누렇게 지질이 바래고 낡아있어, 더 소유하고 싶어도 사정이 여의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각 학교 도서관에 줄이 닿는대로 전화해서 책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우체국에서 직접 직원이 방문해서 8상자를 싣고 갔고 배송 비용은 내가 몽땅 부담했다.
언니의 슬픈 소녀시절이 그 책과 함께 떠나갔고, 그 책들에는 언니의 피눈물과 설움, 한숨이 배어있을 법 해서 나는 수없이 망설이다가 단행했다. 그러니까 나는 중 1부터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언니의 유식한? 책 세상을 섭렵했다고 할까. 글 잘쓰는 언니처럼 되고 싶어 그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어치웠다고나 할까. 여튼 책과 가까워진 것은 거의 6.25 한국전쟁의 무고한 희생물이 된, 영화배우가 될 번하다가 아니, xx 영화사와 첫 번째 촬영도 한, 그 간절한 꿈이 완고한 양반 아버지에게 박살난, 나의 미인 언니 덕분이었다.
지금도 그 낡고 헐어서 야릇하기까지한 냄새를 풍기던, 누렇게 퇴색한 현대문학 표지가 눈에 선하다. 당시 현대문학의 표지는 참으로 특수했다. 매호 표지 그림을 누가 그리는지 모르지만, 미적 안목이 상당히 높은 분의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현대문학의 표지 그림은 아름답고 세련되어 있었다.
서론이 길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이제 나는 전자책 출간을 더 선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굳세게 다지고 있다. 전자책을 내더라도 내가 갖고 싶은 만큼 종이책도 만들 수 있으니 그리 서운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허리뼈가 내려앉도록 어렵게 쓴 내 작품을 내가 가장 먼저 사랑한다. 글을 쓴 내가 우선적으로 즐거워하고, 다음에 타인들, 의식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독자들이 읽어 그들 또한 즐거워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글도 나온다고 하니, 글을 쓰는 가운데서도 쉬임없이 타인의 책을 읽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 글을 점검하는 기회도 해롭지 않다. 유익하고 배울점이 있다.
원고 보느라고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프다. 내일 한방에 가게 되면 물리치료 잘 하는 곳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침만 맞지 말고 마사지도 신청할까 싶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에 기쁨이 더욱 넘치기를! 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이 함께 하기를!
전자책을 내야하는 당위성이 이것으로 원만 타당할까 염려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