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서울로!
거리로! 서울로!
어느덧 2022년 1월 하순이다. 화살같이 빠른 게 세월이라던가. 나는 주변을 좀 정리해야 했다. 우선 집에 오고나서 덜 빠지기 시작한 머리를 간편하게 잘라 줄 필요가 있었다. 참으로 기특한 것은 섬에서 지낼 때 거실과 침실 바닥에 가을산의 솔잎처럼 휘날려 한량없이 쌓이던 내 머리칼이 정신을 차린 점이었다.
처음 며칠은 여전히 술술 빠지던 것이 2주가 지나면서는 현저히 감소했다. 나는 일부러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고 맨 손바닥으로 바닥을 훑었다. 기껏해야 몇 가닥의 며리카락만 손바닥에 잡혔다. 신통했다. 비로소 나는 안도했다. 머리가 마구 빠질 때 얼마나 황당하고 처절했던가. 울고 싶어도 섬에서는 울 수가 없었다.
거리로! 서울로!
엊그제 행사에는 부득이 모자를 쓰고 나갔지만 이제 어깨를 펴도 되리라. 급속한 대량 탈모로 인한 무력감 상실감은 안녕해도 될 것 같아 은근히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거리로! 서울로! 그곳에는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수십년을 다닌 미용실이 있다. 원장님 얼굴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나의 단골 미용실, 나는 기꺼이 지하철을 탔다.
우와!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나는 깜짝 놀랬다. 방에서도 별빛을 볼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때 배타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던 작은 섬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어리둥절했다. 첫번째 차를 그냥 보내버렸다. 다음 차를 타면 사람들이 좀 뜸할까. 퇴근시간도 아닌데 웬사람이 이렇게 많지? 20분 정도 기다리니 다음 차가 도착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모델하우스에서 신축 아파트 청약이라도 있었던가. 한 정류장이 경과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탔다. 내리기보다 타는 사람이 훨씬 늘어났다. 차안은 점점 숨이 막힐 정도로 가득찼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해야 하는데 하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밀착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내릴 생각을 하니 미용실은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나보다 더 급한 볼일이 있는가? 생각해보니 아차! 음력 설날이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았구나.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다음 역에서 그만 하차하고 말았다. 도저히 그 북새통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듯, 사람 귀한 곳에서 살다가 온 나는 하차를 서두른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옷과 옷이 맞닿고 어깨가 등이 부딪히는 장면은 견디기 힘들었다.
거리로! 서울로!는 연기했다. 나는 반대편으로 가서 돌아가는 차를 기다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무섭고 사람이 너무 없어도 나는 무서웠다. 코로나19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은 지하철에, 서울 거리 곳곳에 넘쳐났다. 그래도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많이 있는 도시가 나는 좀더 미더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되돌아왔고 설날이 지나가면 다시 미용실을 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