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바다가 으르렁

능엄주 2022. 1. 10. 06:35

바다가 으르렁

 

바닷물도 잠을 자는가. 으르렁! 으르렁! 짐승이 내는 듯한 소리 멈추니 집 바깥이 모처럼 조용하다. 아니 앵강만 바다 위에 넘실거리는 바람도 잠을 자는가. 그래도 또 모르는 일, 우리가 이곳을 빠져 나갈 때까지는 제발 바람이여 멈추어라!

새벽에는 잠잠하다가 갑자기 돌풍이 불어오는 일도 이곳에서는 자주 보는 일이다. 사람을 날려버릴 듯 무자비하게 몰아치는 바닷바람, 변덕스럽고 고약한 바람이다. 무섭다. 소름돋는다. 사람도 그 변덕을 닮는가. 그 고약한 바람의 성질머리를 사람이 배우는가.

더구나 우리가 머물고 있는 3동의 레시던스는 바다 위 바람이 모이는 곳에 바람막이처럼 지어져있다.  집 근처 동백나무도 그와 같은 자리에 있어 거센 바람에 잎새가 쪼글쪼글 말려올라가고 잎새 중앙 부분이 허옇게 병들어 있어 측은하다. 꽃송이 하나도 탐스럽게 피어나지 못하고 꼬질꼬질 피는등 마는등, 검붉은 색깔만 보이다가 만다. 

 

왜 이처럼 꼭두새벽에 깨어났는지 원망스럽다. 잠결에 왼팔 중앙 부분이 이루 말할 수없이 쑤시고 아팠다. 돌아누우려해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둠 속에 한참을 그런 상태로 누워 있었다. 먼 길 차 타고 갈수 있을까, 불안했다.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3시가 조금 지난 너무나도 이른 새벽, 사찰에서는 새벽달을 밟으며 도량석을 할 시간이었다.

통증을 깊게 느껴 잠을 깼으므로 일어나서 세수 먼저 했다. 오늘은 물 닿으면 얼굴 쓰라리고 땡기는 그 물 말고, 옆방에서 길어다 준 서포문학관 정수로 세수를 한다. 물이 귀해서 세수조차 맘대로 하지 않고 살았다. 어제 그제 밥을 짓지 않고 햇반으로 떼웠으니,  서포문학관에서 길어온 물이 남아 있었다. 

 

세상에나 수질 나뻐, 인심 나뻐, 살기 나쁜 곳에  세상물정 모르고 뛰어든 게 아닌가. 이렇게 아프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집에 가는 날 새벽 기분이 영 아니올시다로 기울고 있네. 내 손을 붙들어 준 게 아니고 비틀었나?  그사람 도대체 뭘 어떻게 도왔다는 거야?  붙들어 주려면 똑바로 붙들어서 안전하게 배에서 내리도록 조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고꾸라지게, 엎어지게 만들어? 그것도 희한한 형태로, 왼팔을 시멘트바닥에 철석! 소리나게 뻗치고 무릎을 구기며 넘어졌다지 않아? 대체 무릎을 어떻게 구기지? 

 

내가 넘어져 다친 이 일로 민사고소를 할 경우에 쾌히 목격자 진술서를  써주겠다는 옆방 작가, 너무 아프니까 내 아름다운 문장이 슬픔으로 통증으로 일그러지고 있잖아.  아픈 팔에다 가방 걸치고 등에는 노트 북을 짊어져야 하고, 또 한 손에는 어제 서포문학관에 올라가서 출력해온 [노도 일기]와 이 집을 떠나기 직전까지 사용한 잗다른 소품을 챙겨 들고 가야한다.  출발하지도 않아서 장타령 늘어놓는 내 심사가 안타깝다. 

 

여기 잠자리 참 편하거든, 보일러 올리면 따뜻하고 군청에서 새로 사 준 이부자리 포근하거든. 오직 그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다. 밤에 더욱 아프고 새벽에 더 일찍 잠이 깬 것도 통증 때문이었어. 불쾌하다. 나는 불쾌하지 않기를 바라고, 삼재팔난 이것도 고려를 좀 하고, 너그럽게 포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도도 열심히 했다고. 그런데 이렇게 아파. 겨드랑이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무릎이 으서지는 줄  알았다니까. 몸 전체가 얼얼하고 아득한데 남보기 창피한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켜 노도 섬에서 짐을 나르는 소장님 가트에 타게 된 것이었어. 

 

방으로 들어가 누워보자. 이러다간 집에 가기도 힘들겠다. 마음을 편안하게, 내가 나를 친절하게 돌봐주어야 한다. 너무 아퍼!  오늘 이상할 만큼 바다가 으르렁 거리지 않는데 나는 더 아파 있다.  바다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 이젠 더는 듣기도 싫다. 공포스러워 노상 잠을 설치게 했던 그 음울하고 처량맞은 소리! 이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