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 섬의 마지막 밤
노도 섬의 마지막 밤
'마지막' 이란 글자가 들어간 글은 어딘가 애끓는 마음 같은 것? 혹은 낭만적인 뜻? 또는 아쉽고 설레는 마음, 미련이 남아 차마 붙잡을 수는 없어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응축되어 있을 것만 같다.
노도 섬에 내가 머문지 석달하고 보름, 어언 백일이 훌쩍 넘었다.
작년 9월 말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입추, 말복, 처서 절기가 다 지나갔어도 노도 섬은 찌는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하고 푹푹 삶았다고 해야 옳을까? 습도가 엄청 높고 온몸이 땀으로 질퍽거리게 무더웠다. 출입구 현관문을 아예 열어제치고, 동북방의 창문 2개와 바다쪽을 향한 창문, 그리고 그 반대의 주방쪽 창문과 베란다 큰 문까지 활짝 열어도 앵강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한 바람이 아니었다. 짭짤하고 텁텁한 바람, 무덥고 끈적거리는 바람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더위는 여전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줄땀을 흘리며 소매걷어 올리고 대청소 먼저 시작했다. 새로 집을 지어놓고 사람이 살지 않아 집 구석, 구석은 노도 섬에 기생하는 각종 벌레의 왕국이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한 벌레들이 드글거렸다. 모기 종류는 또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버젓이 사람 얼굴에 붙어서 순식간에 피를 빨고 사라졌다. 귀신 출몰보다 더 놀라웠다. 모기란 놈이 목에 들러붙어 피를 빨고 도망가면, 사람은 북,북, 목과 얼굴 피부를 긁으면서도 시커멓고 검붉은 건축먼지를 닦아내야 했다. 물걸레를 수십번 빨고 짜고 허리와 손가락이 비틀릴 만큼 두서너 시간 움직여서야 겨우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노도 섬에는 가게가 딱 한 개 있었다. [동정호]라는 명칭은 근사하게 보이지만 노도 섬에 살으러 온 이방인의 우리에게는 별로 유익한 게 없었다. 가장 급한 쓰레기 봉투도, 모기 퇴치약도, 그 흔한 콩나물 한 봉지조차 살 수가 없었다. 설마 사람 사는 곳인데 그 정도는 있겠지 짐작한 건 큰 실수였다. 장아찌 종류와 김치, 고추장, 된장, 한국인의 밥상에 노상 올라오는 기본적인 품목은 집에서 올때 준비했으나 요는 그것만으로는 매일 세끼니 식탁을 꾸리기는 태부족이었다.
노도 섬 안에는 채마밭이 너르게 분포되어 있고, 배추 무 상추 시금치 파 마늘 가지 오이 호박 등이 있어 우리는 주민들로부터 한 두번 얻어먹기도 했다. 얻어먹는 건 한계가 있다. 배타고 남해 읍내로도 원정가서 더러 시장을 봐오기도 하면서 되는대로 국이면 국, 김치면 김치 한 가지 놓고, 주방에 선 채로 대강 밥을 해먹고 살아온 게 어느덧 석달 열흘이다.
끼니 해결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나름대로 글 쓰기에 매진, 글 쓰러 왔지 관광온 것 아니므로 그 옛날의 서포 선생의 고초를 생각하며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이를 꼭 악물고 버티면서 잘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노도 섬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나는 지난 7일 택배 보낼 짐을 싸고 나서 대청소를 했다. 오늘 저녁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대청소를 끝내고 밥을 먹는데, 김치고 청국장이건 모두 간이 맞지 않아 밥 한 숟갈 먹고 귤 한쪽 먹고, 이렇게 귤을 반찬삼아 먹기를 마쳤다.
마지막 밤을 보내는 심경이 그다지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을 수밖에. 고생이 자심해서일까. 아니다. 12월 27일 관음포 견학하고 돌아오다 배에서 하선하면서 절벽을 기어오르다 고꾸라진 여파였다. 오른 쪽 다리가 가부좌 틀기가 안 될 만큼 틀어져 아프기 때문이다. 무릎아래 오른쪽 종아리는 걸을 때도 조심하지 않으면 또다시 고꾸라지게 생겨있다. 왼손은 어떤가? 어떻게 밑에 있는 사람을 끌어 올리면서 왼손만 쥐어? 왼손도 손가락만? 양팔 중간을 잡아야지. 손목이 늘어났는지 핸드 폰도 들기 어렵게 저리고 아프다! 밤에 잠자다가 두세번 깨어나 손목을 주무른다.
찌고 무덥고 습도 높은 기후보다도, 각종 벌레와 모기 종류보다도, 가게가 없고 교통 불편하여 식료품 조달이 어려워 귤로 반찬을 삼더라도 글쓰기는 꾸준했고 열성적이었다. 그런데 노도 섬의 마지막 밤이 나에게 유감이다. 다리 아픔이 예사스럽지가 않다. 대체 내가 왜 어떻게 넘어졌길래 벌써 2주가 지났는데도 이처럼 통증이 가시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는가. 병원에도 몇 차례 가서 물리치료 약치료 침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가 없다. 집에 가면 병원 부터 가야할 것 같다.
노도 섬의 마지막 밤이 분노와 증오로 얼룩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 있는가. 편안한 밤 보내고 내일 아침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유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쉽게 예를 들자면 어린아이를 들어올리려해도 양 팔을 잡고 들어올리지 않던가. 위에 올라간 남자 선장이 왼손 한쪽만 붙들고 3,4미터 아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위로 끌어올려? 끌어올려주고 싶기는 했던 것일까. 일부러 손을 놓았나? 실수로 놓쳤나? 고의냐? 실수냐?
그 사람은 글 쓰러 온 옆방 시인하고도 크게 다투지 않았던가. 글을 쓰겠다고 노도 섬에 입주한 여성작가를 그는 타도할 적으로 알았는가. 실수라 해도 이건 직무유기 아닌가. 고의라면 처벌을 받아야겠지. 아! 많이 아프다. 요즘 짐 싸느라고 아픈 손, 아픈 다리로 일 많이 해서 더욱 통증이 심해졌다. 내 손과 다리가 아프다고 계속 하소연한다.
중요한 것은 그 선장 남자가 전혀 미안하거나 죄송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멘트 바닥에 사람을 패대기 쳐놓고 눈도 깜짝하지 않는 그 비정하고 낯두꺼운 꼬라지! 승객에 대한 안전 의무에 소홀한 점을 들어 해고시키든지 징계를 가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나는 지금 몹시 아프다니까. 인대가 늘어났거나 다리가 뒤틀렸거나, 일할 때는 철두철미(徹頭徹尾) 몰두하니까 잘모르다가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막무가내로 아프다. 아무튼 나는 몹시 고단해도 잠을 못 자고 있다.
노도 섬의 마지막 밤에 내가 어쩌면 좋을까? 이런 판국에 경로당 할머니들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가? 호박 한 덩이, 무 한 두개, 고구마와 시금치 한 소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선장 갈아치워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할매들 중 한 사람도 노도 섬 관리자의 간절한 선장 교체 의견에 찬성 안했다면서? 처음은 그러겠다고 해놓고서.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추천했는데 허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노도 섬 주민들이 처리할 일이고, 나는 내일 10시 배를 타고 이 섬을 벗어나면 다시는 이 배를 탈 일은 없게 될 것이 뻔하다. 왜 여길 또 오겠는가. 서포 선생은 대한민국 어디에나 다 있다. 특히 내 영혼속에 거하신다.
나는 집에 갈 수나 있지. 서포 선생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이 척박하고 외진 산골 작은 섬에서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저술하면서 또 얼마나 뼈가 저리게, 이가 갈리게 신고를 겪어 냈을까. 이래저래 노도 섬의 마지막 밤이 나는 괴롭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