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좀 제대로 하자
일 좀 제대로 하자
나는 옆 집에서 선동하자 얼씨구나!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하던 일을 떨치고 나갔다. 먼 데가 아니고 우리가 석달째 머물고 있는 노도 섬이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일 좀 제대로 하자고 결심한지 사흘도 못 되어서 나는 멋에 씌어서 부둣가로 달려간 게 아닌가. 후회는 없지만 내 앞에 닥친 일이 벅차다.
바깥에 나갔다 온 날은 유난히 피곤을 느꼈다. 기분이 상승하고 고양된 것 같더니 그 상승과 고양은 결과적으로 피로감을 몰고 왔다. 기분 잠깐 좋았으나 내 본업은 그만큼 지체되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디까지 보았더라? 노트 북을 열고 한동안 헤맨다.
그렇다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동물이 줄창 책상에만 붙박이로 앉아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늘까지 타향살이가 74일째니 짧다고는 할 수가 없다. 글 쓰는 작업 외에 읍내에 나간 것은, 미용실에 탈모 케어하러 1번, 치과 진료 1번, 상주우리병원 탈모 진단 받으러 1번, 내 개인 볼일로 도합 3번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금산 보리암을 갔고, 두 번째는 서포 선생 혈흔을 확인하러 읍내 호구산에 있는 용문사에 갔다. 세 번째는 [구운몽] 남해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고故 김무조 교수가 계셨다는 화방사를 답사했다. 입주작가 사찰 방문, 문학기행은 나름 의미 있는 현장답사 차원의 외출이었다. 산세 수려하고 천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 나름의 어떤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멍청하게 놀지 못하는 체질을 타고 났다. 자기자신을 즐겁게, 안락하게 하는데 사뭇 미숙하다. 더구나 한 번 일을 잡으면 그 일이 종료될 때까지는 거의 두문불출, 그래서 두 가지 일을 못 보는, 답답한 일면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나 역시 책상에서 오래 견디는 게 노상 편안해서가 아니다. 시작했으니 끝을 맺어야 하고, 기왕 손에 잡은 일이니 최선을 다하자는 의도였다.
잘 아는 시인이며 소설가는 말했다. 글 쓴다고 노상 엎드려 있다가 세속사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인생을 향유하는 기회를 놓쳐버린다고 말했다. 첫째 돈 버는 일에 등한했다고 한다. 더구나 소설은 쓰는데만 거의 무수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생각을 달리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유익을 좇아 일을 잡았다고 한다. 그 속에서 돈도 따르고 글 소재도 발견한다고 피력했다. 오로지 글, 오로지 시에서 조금 탈피했노라 했다. 다시 말하면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 같았다. 나만의 길, my way 가 저마다 다르니 그녀의 말에 타당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다
감기 기운이 있어 유자청에 더운 물을 부어 마셨다. 실내에 머물던 나에게 어제의 바닷바람이 유해했던 것 같았다. 하루 30분~40분 나는 저 아래 '서포의 책' 까지 걷기를 나간다. 그 정도가 나에게 알맞다고 여겼다. 끼니도 잊고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창밖이 깜깜했다. 걷기를 거를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인적없는 적적한 길을 걸으니 무섬증이 엄습한다. 어둔 길 무섭다고 거르게 되면 밤에 잘 때 종아리가 퉁퉁 부어서 아프다고 호소한다. 걷기는 퉁퉁부은 종아리를 풀어주는 방법이었다. 캄캄할 때는 걷기도 보류해야 한다. 이곳은 타향이니까.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니까.
걷기와 바닷바람은 무슨 차이인가. 배 타고 바닷바람 쐬면서 목청을 높인 게 잘못인가?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좋았던가. 바위가 하도 기묘하게 생겨있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 것인가. 나는 으스스 한기를 느낀다. 구지뽕 고추장에 밥을 한 술 비볐다. 내일 새벽에 거뜬히 일어나 일 좀 제대로 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1권 분량을 더 써야한다. 나에게 중차대한 업무가 남아 있다. 과연 거기까지 나는 잘 마칠 수가 있을지 염려한다.
하루 8시간, 10시간 책상을 마주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삼매지경, 몰입, 몰두, 집중은 잘 해야 3시간~4시간 정도다. 무슨일이든 내 깜량이 있고 수량이 있다. 오래 앉아 있다고 모든 일이 다 성사되는 건 아니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자. 수질水質을 100% 믿을 수 없으니 저녁 세면도 생략하자. 내일 부터는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고 일 좀 제대로 해보자. 나는 나에게 맹세?를 한다. 유자따러 가는 데도 나서지 말자. 물 길으러 서포문학관으로 올라가는 것은 옆집 젊은 작가가 대신 해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생활이 마감돼 집에 가는 날 나는 만족해서 웃어야 한다. 승리감, 성취감, 보람이 충만해야 한다. 그러니 일좀 제대로 하자.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이나마 들썩거리지 말고 차분히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