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 섬을 돌다
노도 섬을 돌다
어제 저녁까지 나는 심신 모두 상당히 고달파라 한탄했다.
'머리가 푹푹 빠지는데 소설이 뭐길래 너는 불통으로 앉아서 소설만 쓰고 있니?'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털갈이 할 때도 아닌데 털이 뭉턱 뭉턱 빠지면 사람이 되어가지고 보고만 있을 거냐?'
'무슨 해결 방법을 찾아야지 엎드려 글만 쓰면 젤이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 머리 다 빠진 다음 대머리박사가 되면 대체 그 꼴로 집에 돌아 갈 수있을 것 같아? 차라리 앵강만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든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글 좌판 걷어치우든지, 양단 간에 결정을 하라고! '
'한심하다. 인간아! 너가 그리 맹꽁이 인 줄 진즉 몰랐다니 내가 미련했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떨어져 쌓이는데 꼴 좋다. 거울도 저리 치워버려. 그 꼴로 거울은 왜 봐?'
그런데 오늘 새벽은 이상했다. 거실로 나와 책상앞에 앉으니 무릎이 시리고 발도 시렸다. 보일러를 켜고 나는 잡념을 떨칠 겸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여기 저기 뉴스를 보거나 메일 확인도 하지않았다. 어제 보던 단락을 제쳐두었다. 극심한 당파싸움으로 피바람 튀기는 장면은 더 보기 싫었다. 서포 선생의 명작이 펼쳐지려면 피바람도 할 수 없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내가 가장 신명나서 써놓은 노도 편을 읽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신명이 왜 났는지 나는 이유를 모른다. 그 부분을 쓸 때 나는 신바람이 났다. 문장이 물론 구태를 면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긴 문장의 흐름을 차단하고 단문으로 고쳤다. 어려운 중국식 한자는 쉬운 우리말로 해석했다. 고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과감하고 톡톡 튀는 듯한 새로운 단어와 문장이 홍옥사과처럼 샛빨갛게 영글어가는 것을 감지했다.
그해 가을 나는 동생과 함께 사과과수원에 갔다. 나보다 동작이 유연하고 재빠른 동생이 사과 나무에 올라갔다. 푸른 잎사귀와 조화를 이룬 샛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푸른 하늘 흰 구름 아래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동생은 홍옥사과를 한 개 따서 나에게 던졌다. 한 개 두 개 다섯개를 따서 사과나무 아래 서 있는 나에게 던져주었다. 나는 바닥에 떨구지 않고 다섯 개 모두를 잘 받았다.
"얼른 먹어봐! 맛 있어!"
동생은 나무에 매달린 채 홍옥사과를 따서 그자리에서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나는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동생을 쳐다보며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한 개 먹기 바쁘게 또 한 개를, 나는 다섯 개를 후딱 먹었다. 맛이 새콤하고 사각사각 씹히는 소리가 싱그럽게 울렸다. 동생은 자세가 불편해서인지 사과즙을 질질 흘리면서도 익숙하게 잘 먹어치웠다.
아침에 내 기분이 그랬다. 홍옥사과를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던 옛생각이 다 날 만큼 상쾌했다. 서기瑞氣같은 게 내 전신을 휩싸는 것 같았다. 내 문장이 또한 그랬다. 이 글 누가 썼지? 묘사가 그럴듯하네! 현장보다 더 멋지네. 하고 자화자친을 늘어놓았다. 나에게 서기보다 더 차원 높은 어떤 강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글 속에 빠져들어갔다. 아, 이제 제 길을 찾았나 싶었다. 제 길 찾은 듯한 감이 드는 것이 특별하다할까. 그것은 바로 노도 섬 부분이었다.
노도 섬을 일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책상 앞을 벗어나는 게 아쉬웠다. 썼다고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지금 다 썼다고 평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역사소설은 굉장히 어렵고 시간 걸린다. 사사건건 고증, 확인이 필요했다. 조선시대의 화법, 연도, 지명, 인명 등에서 무수히 걸리적거렸다.
바람결도 그만하고 배 타고 먼 데를 가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바다를 드라이브 한다는 생각이었다. 밥도 안 먹은 채, 되는대로 코트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후 선창가로 나갔다. 고기잡이배였고 노도 섬 주민이 배 임자였다. 우리는 배 바닥에 앉아서 더운 차를 마셨다. 오늘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계획한 시인과 관리소장님께 감사했다. 또한 배를 움직여 우리를 기쁘게 대접하는 노도 주민에게도 감사드렸다.
우리가 승선하자 배는 곧 앵강만 바다로 나아갔다. 배가 가는 방향의 왼쪽은 남해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멀리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보리암을 품은 금산의 기암괴석이 바라다보였다. 오른 쪽은 노도 섬 일대의 바위산, 퇴적암 군락이 희한한 풍치를 뽐내고 있었다. 바닷물이 부단히 닿고 부딪히고 달려나가면서 저토록 형용하기 어려운 오묘한 형상을 만들어놓다니 보면볼수록 기이했다. 바위가 그냥 바위가 아니었다. 큰 바위에 앉아 낚시하는 신선 같은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속초 대명콘도에서 바라보던 부처님 설법 듣는 모습의 울산바위, 친구들과 거제 바다를 돌면서 탄성을 지른 행복의 문 같은 우아스런 바위굴, 태백산 현불사 기도갈 때 버스에 탄 채 거쳐가는 아취형 바위와는 또다른 매력이 노도 섬에 있었다.
어! 어! 어이구! 멋지다!
어머 저것 좀 봐. 바위가 자연과 잘 어우러진 중세 건축물 같아! 아니 저건 폭포 형태야!
우리는 철 안든 사춘기 애들처럼 한껏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노도 섬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무척 살갑게 느껴졌다. 그들 바위에 올라 차를 마시면서 먼 바다를 조망하는 환상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저 바위만 하더라도 노도 섬을 특색있는 관광지로 발전시킬 수 있겠는 걸!
우리는 이곳 국립공원 노도 섬 관리자에게 아부같은 찬사를 늘어놓으며 바닷가에 면한 바위 군을 훔씬 즐겼다. 시원하고 즐거운 나들이였다. 노도 섬의 특장을 하나 더 추가한 날이었다고 여긴다. 내 글 속에 지금 한참 노도가 서술되고 있는 싯점이어서 노도! 작은 섬! 노도 섬 일주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어제까지 셀수도 없이 뭉턱 뭉턱 빠지는 머리 때문에 나는 집 생각이 간절했다. 병원에 치료하러 가야할 것을 방심하고 있는듯 해서 입맛도 살맛도 현저히 감소한 날이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내 성정이 변덕스러운가. 나는 무엇을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알았다. 나는 견뎌야한다는 것을. 홍옥사과가 온갖 자연의 시련과 풍상를 견디고 샛빨갛게 농익어야 제 맛이 나는 것처럼, 나는 나에게 닥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일을 중단하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노도 섬의 기기묘묘하고 거대한 바위 군群이 내 고단한 현재 속에 주인이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