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잠이 깨어
한밤중 잠이 깨어
불을 켜고 시간을 보았다. 새벽 2시가 채 못된 한 밤중이다. 잠을 잘 자야만 낮시간이 평화로울 텐데 이 무슨 일인가.
어제 저녁엔 유난히 전화가 많이 왔고 통화시간이 매우 길었다. 한참 몰두하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 온 동료 작가 전화는 출판기념회 모임에 관한, 나는 참석할 수 없지만 비교적 유쾌하고 웃을 수 있는 전화였다. 또 한 사람의 전화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약속된 기간에서 반 쯤 지나가는 동안 나도 느껴본, 별로 개운치 않은 이야기였다. 3개월 입주민이라는 공통점에서 볼때 나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없으니 끝까지 경청하느라 내 저녁식사가 늦어졌으며, 또한 귀중한 내 작업시간이 폰을 귀에 댄 채 덧없이 흘러갔다.
3번 째로 딸이 내 안부를 묻는 전화에는 대강 답을 한다. 끼니 때를 놓치지 말고 잘 챙겨먹어라. 바람 심한 날 밖에 나가지 마라, 피곤하다고 느끼면 바로 쉬어라, 초보 학부모의 잔소리 수준이었지만 나는 성가시게 여기지 않았다. 수긍하고 짦게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내코가 석자 다섯자여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잠간씩 걷기운동을 나간다. 지금 쓰는 글은 그냥 머리속 상상으로만 쓰는 게 아니다. 수시로 자료를 보아야하고, 고증考證을 해야하고, 아득한 그 옛날에나 사용하던 중국식 고문, 한자에 이르러서는 내 방식대로 풀어쓰거나 해석, 주석을 따로 붙여야 할만큼 조금 어려운 과제였다.
가끔 자료를 끌고 옮겨다니거나 노트북을 짊어지고 산과 바다, 경개가 수승한 저 산 위 서포 문학관으로 작업장소 이동도 하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꼼짝없이 한 자리를 줄기차게 차고 앉아서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문장을 엮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날은 아예 문밖에 나가 볼 수도 없이 하루 해가 저무는 모습을 책상에 앉아서 지켜보기도 한다. 내 사정이 이러한 연고로 주민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며, 그들이 산책하는 나를 불러 앉히고 막걸리잔을 강제로? 내손에 들려주어도 나는 사양해야 했다. 그분들은 의례히 '나이가 몇이냐?' '몇 남매나 두었냐?' '영감은 계시냐' 가 고정된 레퍼토리였다.
아마도 옆집 시인이 그와 유사한, 약간은 골치 아픈 입장에 처한 듯 싶었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글쓰러 왔나보다 라고만 보아주면 되는 것을, 남의 신상은 캐서 뭘 하자는 것인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여생을 보내러 온 사람들이 아니지 않는가. 요즘은 인적 드문 산으로, 서포 문학관 방향으로 걷기 코스를 변경했다. 서포 문학관 올라가기는 빙 돌아서 바다가 이어지고 낮에도 노도 섬 주변의 울울한 숲이 무서워 중간에서 돌아서곤 한다.
처음 올 때 주민들이 호박도 한 개 따주고, 무도 가지도 풋고추도 주고, 상추도 한 응큼 주고, 새끼 고구마도 나누어 먹으라고 한 봉지 주었다. 내가 그 무거운 걸 들고 비탈길을 올라오느라 본래도 튼튼치 못한 팔이 막 저렸다. 그걸 일일이 다듬고 대여섯번 씻어 삶아가지고 옆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감탄하면서 먹었다.
여기오고 보니 호박 한 개 무 한 개의 가치가 엄청 큰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고마운 점도 많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됐든 그냥 덥석 받아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드려야 한다. 그 답례란 곧 이곳에 와서 쓰고 있는 소설 작품이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한 집, 한 사람이었다. 초면부터 과잉친절이 어리둥절하더니 이렇듯 오늘에 이르러서 내 옆집하고 말썽이 생긴 것이다.
자주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그간의 사정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일, 내가 여기 오면서 우려한 바로 그런 일, 사소하면서 신경 거스리는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흔히 전원주택을 동경하거나, 코로나19로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전원에 들끓는 모기종류와 각종 벌레보다 사람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정서가 다르고 살아온 풍토와 문화가,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긴 전화때문에 내 곤한 몸이 늦게 잠들어 수면시간이 고작 3시간으로 종 친 것인가. 나 역시 우려했던 부분이어서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사람들은 '나이 먹어 주소지를 옮기지 말고 살던 곳에서 살다 가라고.' 권한다. 전에 남미에 갔을 때 그곳 교포들이 말했다. 서너사람만 모이면 편이 갈린다고. 그게 한국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편이 갈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서로 원수처럼 헐뜯고, 모함하고 험하게 드잽이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에 등장하는 전대의 극심한 사색당쟁 여파일까?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 꼴은 절대 못 봐주는 행태가 한심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옆집과 주민 사이의 그간의 사정은 내가 잘 모른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묵과하고 지나가야 하리라. 인생살이에는 그보다 더한 일도 수다하게 다가오지 않던가. 텃세, 갑질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무난히 지나가면 좋을 것 같다. 한밤중 잠이 깨어 나는 이처럼 시간을 헤프게 쓰고 있다. 무모한 것은 한밤중에 잠에서 깬 나 자신인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