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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몰입

능엄주 2021. 10. 17. 18:34

그 가을의 몰입

 

 

2020년 1월 31일이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하긴 어떤 잠재의식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토지문화관을 검색했다. 2021년 창작실 입주 공모에 관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미 입주 신청이 완료된 상태였다.  31일까지라면 아직  31일의 몇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보았던가. 과연 가능할까 염려하다가 나는 곧바로 입주 신청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제출했다. 

 

선정되면 독립된 공간, 숙식이 자유로운 곳에서 장편소설 한 편을 쓰라는 계시고, 안 되면 다른 일을 하라는 뜻으로 알자고 편하게 생각했다. 장편소설 한 권을 쓰려면 최소한 3개월 정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신청서에 5,6,7월 을 명시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일정이 변경되어  10.~11 월 두달간의 입주 허가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시험 보러가는 옛 유생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수년 전 대수술을 하고 3년 여를 병상에 누워 있을 때, 某선생님께서 나에게 [구운몽]을 읽으라고 권했다. 나는 예전에 일찍이 읽었지만 혹시 그 책 속에 내가 병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묘책이라도 있나 싶어서 그 말씀에 순종했다.

 

누운 채 [구운몽]을  읽다가 새삼스럽게 재밌는 구절, 절묘한 표현이 발견되었다. 오랜 병상에 쳐져 있어 외로운 연유였을까.  의자를 딛고 일어나 앉아 빨간 볼펜으로 줄을 그으면서 읽었다. 아픈 사람이 읽어도 웃게 만드는 묘미가 그 책에는 무궁무진했다.  나는 어머니 윤 씨 부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서포 선생의 효심이 녹아 있는 작품을 읽으며,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맘껏 웃을 수 있었다. 나는 본시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을 으뜸으로 치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른 바 healing의 효과가 탁월했다. 

 

따분하고, ~ 척하는 어려운 문장 구사 말고, 늦가을에 밭에서 금방 뽑아와, 다듬고 씻고 절인 후 곰삭은 칼치젓갈에  버무린 무청겉절이처럼 저분저분 먹히는, 유식하건 무식하건, 어떤 계층의 독자든지 즐겁게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순수와 통속의 중간쯤 되는 소설 한 권으로  삶의 아픔을 잊을 수 있고, 위로받아 씽씽 힘이 솟아나는,  나는 그런 소설을 꿈꾸고 있었다.

 

토지문화관을 떠올리면 나는 제일 먼저 집중, 몰입을 연상하게 된다. 박노해의 '고요히' 시구처럼 고요하고 고요한 곳이 토지문화관이었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방에서 나는 두달 동안 a4 100매에 이르는 원고를 쓸 수 있었다. 산간지역이라 늦가을 추위가 만만치 않아 추위를 심하게 타는 나에게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고 박경리 선생님의 영향이랄까. 이곳에만 오면 모든 사람들이 순조롭게 몰입할 수 있고, 글줄이 잘 풀린다고 토로한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그 가을의 몰입은 귀중한 창작의 시간이 되었고, 온전한 몰입, 집중이 가능한 곳이 토지문화관이었다. 맘껏 몰입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토지문화관을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