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강만의 고등어
앵강만의 고등어
L . G 에서 세탁기를 수선하러 온다고 하여 대기했다.
12시 30분 배를 타고 온다니까 못해도 13시에는 창작실 1호를 먼저 손 본다음, 2호실인 내 방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일 후덥지근하고 무더워서 땀을 많이 흘려 빨랫거리도 많았다. 에프킬라를 하도 여러 번 뿌려놓은 터라 바닥이 끈적거리는게 냄새도 나고 지저분해 어제밤에 이어 다시 집 전체를 청소했다. 이만 하면 됐지 하고 돌아서보면 어느새 또 날파리떼 침입이라, 재빨리 에프킬라를 가져와 살포한다. 살포하면 곧 날파리 시체가 바닥에 지천이다. 하루 종일 날파리 벌레들과 씨름이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식욕도 안나고 몸이 늘어졌다.
딱 10분만 누었다 일어나자. 그러나 나는 눕는 것보다 세탁기 기사가 오기 전에 밥을 먹어두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어찌 하다보니 오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무엇이 있기는있는데 꺼내기도 싫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컵라면 한개 먹기로 했다. 우동라면 컵이었다. 전에 동하녀석이 배고프다고 학교가 끝나 가방매고 달려왔는데 해줄 게 없어서 우동라면 컵을 먹게 한 적이 있다.
녀석이 맛있게 국물까지 컵째 들고 훌훌 마시고 갔다. 그때 기억을 하면서 나는 간편 위주로 우동라면 컵에 끓는 물을 부었다. 그리고 5분 후인가. 뚜껑을 열고 한 젓갈 끌어올려 맛을 보았다. 국물은 싫어서 국수 가락만 건져 먹는데 두 젓가락을 먹자 더 먹으려는 생각이 사라졌다. 맛이 없다. 아니 맛은 좋은데 내 입맛이 없나?
세탁기도 잘 고치고 후련했다. 저녁 밥은 책을 아는 경로당 할머니가 준 호박을 저며넣고 풋고추, 표고버섯을 넣어 된장 찌개를 끓였다. 호박은 오리지널인데 여기 오기 전날 대형마트 판매대에 진렬한 된장 중에 가장 값이 비싼 토종된장을 샀다. 모처럼 끓인 된장찌개가 간이 안맞았다. 밥맛이 더 달아난다. 멸치를 안넣었으니 맛을 운운하는 게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그때 마침 옆 집에서 시인이 전화했다. 앵강만 고등어 낚시를 보러가자고. 고등어가 많이 잡히면 사오고, 밤 바다를 구경할 겸 함께 가자고. 나는 여기 온후 계란 구경도 못했으니 귀가 솔깃했다. 저녁 산들바람이 상쾌했다. 길가 감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높이 뛰기로 대봉감을 두어 개 땄다. 그것은 길가는 누구나 다먹을 수 있는 감이라고 시인이 말했다. 대봉감 2개를 들고 기분이 수수한 채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갔다.
주민 몇 분이 바닷물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신선처럼 앉아있었다. 그분들은 과분할 만큼 외지에서 들어온 우리에게 친절하시다. 철럭! 철럭! 파돗소리 힘차게 들리는 돌계단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 보았다. 하늘 가득 별빛이 드넓게 피어나고 있었다. 300여 년 전 서포 선생도 별빛을 바라보며 앵강만에서 낚시를 하셨을까. 밤 낚시는 일종의 명상 수행 같은 의미도 있지 않을까. 침착함과 기다림.
와아! 환호성과 함께 낚싯줄에 고등어가 엮여 요동을 친다. 얼마간 파닥거리다가 결국은 고기 담는 양동이로 떨어진다. 어떤 놈은 낚싯밥만 먹고 도망갔는지 가끔 빈 낚싯대가 올라오기도 한다. 대개는 낚시대를 살짝 드리우자마자 고등어가 잡혀올라왔다. 끌어올려진 고등어는 금세 큰 양동이를 반넘어 채웠다. 잠시 동안 상당한 성과였다.
고기를 담는 검정색 양동이가 온통 고등어 비늘로 반짝반짝 빛난다. 제법 큰 놈도 있고, 어떤 건 너무나 작아서 미꾸라지 처럼 보였다. 고등어가 크건 작건, 많이 낚이는 게 좋은 일인가. 조그만 새끼가 올라오게 되면 내 마음이 이상하게 변했다. 고양이든 병아리든 새끼는 무엇이 됐든 애잔하고 안쓰러운 그 무엇이 있는가?
음력 8월 그믐밤이 점점 깊어갔다.
"다 갖고 가라마." 낚싯꾼 아저씨들이 고기 양동이를 들어 비닐 봉투에 들어부었다. 그 비닐 봉지를 받아들었고 우리는 밤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간다. 달도 없는 비탈길에 가로등불이 우리의 그림자를 비춘다. 나는 알았다. 고등어도 우주의 한 생명체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어쩌다 한 두끼 반찬에 족하다. 낚시 바늘에 꿰어 사력을 다해 퍼덕거리는 고등어를 목도하고나서 나는 불현듯 밤이 야속했다. 그 밤의 외출이.
지난 날 내 병이 자못 위중했을 때, 아들이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한강, 임진강을 돌며 고기를 낚아왔다. 가물치 매기 잉어 붕어 등등. 내가 아는 물고기 이름이다. 그걸 일일이 배를 따고 씻어서 아들은 나에게 어탕을 끓여주었다. 나는 허기가 져서인가. 들깻잎을 얹어서인가. 비린 줄도 모르고 국물을 제법 떠 먹었다. 그러나 딱 한 번이었다. 어탕을 먹고 양치하려고 욕실에 갔다가 욕조를 가득 채운 물고기를 보고 기함을 했다.
"나 안먹어, 못 먹어. 제발 쟤들 살려줘!"
내가 울부짖었고 그것으로써 아들의 밤 낚시는 종쳤다.
그렇다. 나 살자고 다른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 나는 밤 바다에는 다시 안 가기로 마음 정했다. 고등어가 죽어가면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여기 온후로 모기, 날파리 종류는 수도 없이 죽였다. 해충이니까, 안 죽이면 내가 물리고 가렵다. 진물나고 피부에 물어뜯긴 흉터가 남는다.
낚시 좋아하는 아들에게 이곳 앵강만 고등어 낚시 이야기를 해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하기는 했다. 낚시 좋아한다고 아들이 이 먼 곳까지 달려올 수 있을까. 그러나 오고가는 그것만이 문제 아니다. 깊이 생각하노라면 내 발상이 심히 잔인하다. 고등어를 잡아야 아들이 좋아한다고? 그건 근사한 일이 못된다. 나는 내 마음을 그렇게 정리했다.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