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초파리 피해

능엄주 2021. 8. 29. 05:15

초파리 피해

 

먼지보다 더 작은, 감히 모기축에도 들지 못할 쬐끄만 날파리가 올 여름 내내 나를 괴롭혔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이랑곳없이 여전히 가장 민감한 부위에 빨대를 꼽고 아귀 같이 피를 빤다. 그냥 괴롭혔다는 말로는 태부족이다. 악랄하고 집요하다.

냄새가 고약하고 독한, 가끔 텐트안에 켜논 채 잠 자다가 온 가족이 질식사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그 모기향, 또한 냄새로 초파리 종류를 죽이는 전자 매트에 더하여 밤에는 일부러 선풍기를 틀어 초파리의 침입을 억제하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 다 허사였다.

 

밤뿐 아니라 낮에도 몸 여기저기 수도 없이 물린다. 전에 손자애들하고 함께 잘 때도 유독 나만 물렸다. 어린애들이 모기 등속에게 물리지 않는 건 천만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어디를 가도 누구와 함께해도 물리는 건 나였다

 '엄마 피가 제일 달은 모양이다' 

딸이 말했다. 피에 단 피가 있고 쓴 피가 있는지 모르지만 별스럽게 물것을 타는 내 피부도 문제는 문제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초파리에게 물린 상처를 봐주기가 민망할 정도다. 온통 불긋불긋, 무슨 열꽃이 핀 것 같고, 분홍색 점이 무수히 내 얼굴, 발등, 손가락, 구석구석에, 눈에 잘 뜨이지 않아, 긁을 수도 없고 약을 바를 수도 없는, 손이 닿지 않는  부위까지 알뜰하게 물어뜯은 것이다. 얼마후 초파리에게 물린 곳은 꺼멓게 피부가 변질된다.

 

심지어는 오른쪽 볼은 초파리말고 더 큰 날파리가 물어뜯었던가. 초파리가족이 단체로 침입했던가. 아예 홈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 알을 깠는지. 수개월이 지나도 처음엔 붉은 색이던 게 차츰 부풀어오르면서 진물이 나고, 세수할 때는 곤란을 겪었다. 물기가 닿으면 쓰리고 아팠다. 약국에 가서 각종 연고를 사다 발랐으나 전혀 낫는 기미가 없어 마침내 피부과를 방문했다.

 

레이저 수술! 높은 침상에 반드시 누워 부분마취를 하는 듯, 얼마후 상처를 후벼파는지 무슨 액체같은 물질이 내 얼굴에서 나오는 게 감지됐다. 피가 흐르는가, 계속해서 꾹꾹 누르는 닥터의 손길이 내 오른 볼에 한동안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무슨 테잎을 오른 볼에 붙여주고 2일 후 그것을 떼라고 했다. 수술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한 여름이라 쉬지않고 땀이 흘러도 그것을 뗄 수도 만질수도 없었다. 2일이 되자 나는 손거울을 가져다 놓고 조심조심 그 노르스름한 테잎을 뜯었다. 윽! 꼭 물고기 창자같았다. 시커멓고 긴, 또한 누런 고름같은 것이 그 노르스름한 테잎에 줄줄이 딸려나왔다. 대체 이게 무얼까. 징그럽고 더러워보이는 그것들이 내 얼굴 깊숙히 박혀 있었다니 황당했다.

 

차라리 큰 모기란 놈은 초파리에 비하면 순진하다고 할까. 날아오면서 위잉! 신호를 보내지않는가. 사람들이 피할 시간, 방어할 준비를 할 수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불을 켜면 이 큰 모기들은 벽에, 천정에 날아가 숨는데 파리채든 모기약이든 뿌리면 형체를 발견할 수 있어 잡기도 수월하다. 근래 이 큰 모기는 자취를감추고 조그만 것들이 활개를친다. 이 쬐끄만 초파리 족속들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귀신도 모른다. 소리소문도 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피를 빨고 도망친다. 보이스피싱이 이런 초파리놈들 행투와 비슷할까.

 

가을 바람이 불면서 유리창 문틈에 우리나라 토종 참깨 같은 초파리 번데기가 수두룩 발견된다. 암컷 초파리가 한번에 알을 100개씩 낳는다고 전한다. 문틈에 홈키파를 듬뿍 뿌려 참깨같은 초파리 번데기를 사살한다. 이들은 여름 내내 나의 원수였고 나는그들의 피해자다. 물린 부위가 한두 군데인가. 몹시 가려워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했다. 놈들이 피만 빠는 것이 아니라 독침까지, 아니면 연한 볼 부위를 파고 들어가 알까지 까놓아서 여태 내 얼굴에 상처가 흉하다. 그따위 미물에게 당한 나는 많이 창피하다. 이 가을 초파리 없는 곳으로 이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