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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선선해도

능엄주 2021. 8. 22. 12:25

갈바람 선선해도

 

어제 비가 제법 쏟아지더니 오늘 새벽 기온은 딱 늦잠 자기 좋았다.

눈부신 가을 날, 잠에 취해 있기는 아쉬운 감이 있지 않은가. 이미 깼는데 다시 잠이 올까 싶지도 않았다.  밤새 나는 거의 깨어 있었다. 24시 넘어 잠자리에 들어 5시에 일어나기까지 무려 6번을 깼다. 

왼쪽 치아가 쑤시고 아팠다. 항생제를 줄창 먹었어도 통증이 사그러들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하지? 오늘 음력 7월 보름날. 일년 중 우주의 기가 가장 왕성한 때라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오늘은 2021년 하안거 우란분절 회향하는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경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코로나19로 자기 남편 삼시 끼니를 마련해주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훨씬 생동감 있었다. 얼마전에도 동생부부와 칠불사를 다녀왔다더니 음성에 칠불사 산기운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갈바람 선선해도 나는 아무 데도 못가! 나 아파!"

 만나고 싶었다. 근 2년만일까. 2년 동안 목소리만 듣고 지냈다. 우리가 언제 적 우정인가. 태백산 현불사의 별빛 현란한 밤. 밤이슬을 맞으며 날이 새도록 영령보탑을 돌았다. 보행 명상이었다. 하늘 가득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지켜 보는가운데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묵묵히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숲속에서 산새가 울고 계곡물 소리가 싱그러운, 신령스러운 밤이었다. 우주 법계가 청량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부처님의 가피가 저절로 임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형제, 지인들이 사후死後에 뭘? 잘해준다면서 모두 타종교로 가버린 이후에도, 그녀와 나는 한사코 절 뜨락을 밟으며 불심을 돈독히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날 나는 그녀에게 아무 데도 못 간다고 말했다. 오늘 2021 하안거 해제일, 합동 천도재가 마감되는 날 아닌가. 엊그제 미리 다녀왔다고는 하지만 나는 무작정 조계사 뜨락에만 가면 심신에 평화가 찾아온다. 어쩌나! 지금 컨디션이 바닥 아닌가.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쉬기로 한다. 미역죽을 끓여놓고 외출한 딸애가 오늘은 특별하다. 내 몰골이 이제야 그애 가슴에, 눈에 들어온 것인가. 이온수를 냉장고에서 꺼내놓고 냉기가 가시면 마시고, 초콜릿과 양갱을 간식으로 먹으라고 한다. 글쎄다. 식욕이 동하면!

 

더 아파지기 전에 삶을 정리해야겠다. 원하기는 두어 편 장편을 더 쓰는 것이지만 억지를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내 몸 나아지는대로.

제일 많이 아픈 어린이가 제일 많은 세월을 살고 있으니 심각한 아이러니다. 살고 있는 그 뜻이 행여 무엇일까. 하늘나라에서 받아가지고 온 숙제가 미비 상태인가? 단제 선생님은 내가 몹시 아파서 죽고 싶어도 숙제를 다 못해서 저승사자가 왔다가 그냥 간다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자. 바람결이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