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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능엄주 2021. 7. 24. 11:53

무엇을 먹을까

 

이전에 경험한 이야기를 거론하는 게 썩 달갑지는 않지만 쓸 수밖에 없다. 불과 얼마전까지 나는 길거리 아녀자들한테서 종종 야채나 과일을 사오곤 했다. 새벽 일찍 밭에 나가서 손수 채취해온 싱싱한 것들이 대형마트나 수퍼에서 구입한 것보다 싱싱하고 맛도 더 좋았다고 기억한다. 나는 한 소쿠리의 시금치를 사오면서도 그 시금치를 심고, 거두어 팔고 있는 할머니가 우럴어 보인 일도 있다. 매우 고마웠다. 맛이 있으니까.

 

대형 마트나 슈퍼에 가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너르고 시원한 공간을 가트를 끌고 다녀봐도 내가 살 건 극히 간단하고 한정돼 있었다. 가족이 단출하니 나에게는 여러 품목의 식재료가 필요 없다. 식품 매장을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 2층으로 오르내리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시골 아낙네들이 직접 농사지었고, 새벽 이슬이 마르기 전 채취해 가지고 나온 것을 사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농약을 안치고 유기농으로 재배했다고 하는 야채는 찾는 이들이 많아 조금 늦게 가면 동이 났다. 그 종류로는 대개 상추 호박잎 애호박 시금치 무 배추 가지 오이 감자 콩 열무 깻잎 양파 토마토 옥수수 등, 품목이 다양하면서 값도 거의 비슷비슷했다. 일찍 가면 어릴 적 외갓집에 가서 따오던 호박잎, 상추 맛을 재현시킬 수도 있고, 그날 그날 필요를 충당시킬 수 있었다. 동물성 식품이 필요하면 별도로 정육점을 이용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 시골 아낙네들의 야채 재배 방법에 이변?이 일어난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농산물에 하나 같이 크기와 맛의 변화가 보였다. 양파가 어린아이 머리통처럼 큰 것, 깻잎은 프러터너스 잎사귀처럼 질기고 넙적하고, 더 크지 못하게 두꺼운 비닐로 꽁꽁 싸맨 호박, 어릴 때 익숙하던 삘기 풀처럼 손이라도 벨듯이 크기가 장대같고 질겨져버린 부추, 시다가 냉장고에 보관해도 곧바로 녹아버리는 호박잎, 금새 썩어버리는 오이와 호박, 청양고추, 아무튼 전 품목에 걸쳐서 변화를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구입한 것들을 얼른 먹지 않고 냉장고에 그대로 놓아둔다고 할 때, 이들은 한 같이 제풀에 썩기 시작, 구린 냄새를 풍기며 팍 곯아버린다. 식재료로 사용하기는 고사하고 흐물흐물 분해된 것들을 내다버리기도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온 즉시 조리를 해서 먹었다면, 위장에 내려가서 무슨 사단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들이 한결같이 고유의 맛을 잃고 있었고, 아무리 양념을 가해도 그들에게는 맛은커녕 생명력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쉽게 곯아버려 형체가 무너지고, 썪어 냄새를 피우므로 섭취는 불가였다.

 

식탁에 앉으면 짜증부터 난다. 코로나19에 혹서까지 겹쳐 그러지 않아도 식욕 이탈인데, 근본적으로 식재료가 이런 상황이니 매우 절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솔직이 안심하고 먹어 줄 식재료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래전 부터 유기농을 주로 판매하는 식품매장에 단골로 다녔지만 거기도 예전에 비해 물품의 질이 현저하게 변해 버렸다. 유기농 재배라고해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땅이 홀로 온전할지 우려되는 것이다. 값이 월등히 비싼 것으로 보면 그 값에 상응, 양심껏 재배했을 것이란 믿음은 유지하고 싶지만.

 

유전자 변형 식품, 성장조절제를 먹고 자란 식재료가 아이들의 건강을 망치는 주범이 아닐까 걱정된다. GMO에 대해 검색을 해보나 마나다. 언제나 중요 사안에는 찬반이 엇갈린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예측 불가능, 불확실성,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다. 찬성 측은 식량부족 문제 해결, 환경오염 감소, 극한의 자연환경속에서도 수확이 가능하다는 경제적인 면을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개개의 식물이 고유의 맛과 생명력을 잃고, 모양도 거대하게,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으로 변한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먹거리 걱정에 마트에 가기도, 길거리 아낙들의 난전에 가기도 저어된다. 대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몰고온 새삼스러운 문제인가. 연일 37,38도를 상회하는 혹서 탓인가. 끼니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