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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런 일이

능엄주 2021. 7. 21. 14:07

어느날 그런 일이

 

소식이 없던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궁금해서 여러 번 전화해도 전혀 통화가 안 되었다.

안양에 있는 치과에 오면 치료끝나고 꼭 자기한테 들려 점심을 함께 먹자는 전화를 오래 전 몇 번 받았다. 치과 치료 후 어디를 간다거나,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한다는 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이 너무나 간곡하게 원하므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치과에 가는 날을 달력에 표시를 해놓고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하루 앞두고 그분이 아침 일찍 전화를 해서 그 약속을 파기했다. 내가 편안할 때 만나자고 했다. 컨디션이 양호한 날 전화해 달라는 것이다. 그게 두번 세번 반복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역시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그대로 지나갔다.

 

여러 자식 중 막내하고 둘이 살다가 막내딸이 안 내보내주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내보내고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그분은 혼자 살았다. 처음엔 식사도 혼자, 병원에 약타러 가는 것도 혼자, 무엇이든 혼자여서 신경쓸 일이 없어 무척 편하다고 하셨다. 근처에 아들 내외가 살아 반찬을 해오고 자주 문안드리니 그것도 괜찮다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약을 타러 서울시내 대학병원에 갔다가 쓰러져서 알수도 없는 헛말을 했다고 한다. 병원 직원이 그분의 진료카드를 보고 가족에게 전화하여 집으로 모셔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혼자 사는것도 나이 많아 한계가 있나보다라고 심약한 말씀을 했다.

 

"어때? 이러면 요양원으로 가야하는 거지?"

 요양원요? 거긴 왜요? 아드님이 옆에 사신다면서요.

''다 소용없어. 지들도 출근하니까 바쁘지"

그럼 요양보호사를 부르세요. 낮에 몇 시간 와서 같이 있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요.

"여하튼 더위 좀 가시면 우리집 오라구."

 

나의 20대 초 L 교수님 댁에서 만난 인연으로 오늘날까지 서로 소통하며 지내왔다. 이제 이분도 내곁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여겼다. 복잡한 대학병원 구내에서 넘어진 것만도 엄청난 일인데, 무슨 헛소리를? 혼자 살다보니 영양면에서 미흡하고 정신적으로도 소외감, 우울감이 깊었던가. 자식이 열이면 뭘하나. 지들이 아프거나 늙어본 일이 없으니 노모의 삶을 이해하기는 무리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요양원을 간다는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일 것 같다. 돈벌이에만 급급, 입소자들을 학대하고, 음식 같지 않은 걸 식사라고 주고, 뉴스에서 보면 노인들의 인권조차 없는 곳,과거의 고려장이 오늘날의 요양원이 아닐까 싶다.

 

자존심이 강한 분인데 오죽해서 요양원을 말씀 하실까. 전화를 끊고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노인들이 갈곳이 어디인가. 있는 재산 다 털어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집까지 사주었어도, 마지막 인생길에 그 노모는 양로원을 말씀하시고 있지 않은가. 노쇠는 누가 되었든 서럽다. 하루하루 마모돼 가는 심신이 공포다. 믿고 의지할 아무 것도 없어 마직막 카드로 요양원을 말씀하신 것일까. 그런데 나는 왜 오라 하시는지?  L 교수님 댁애서 함께 고생했다고 나에게 의논하실 일이라도 있는가.

 

나는 그분의 정황이 궁금한 채로 집밖으로 나가서 다이소의 라면 냄비를 사왔다. 사는 날까지 타인의 신세를 지지 않고 라면 한 개라도 내손으로 끓여먹고 살자고 다짐한다. 어느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각별히 유념해야 하리라. 가족이 웬수라는 모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업보 소멸하려고 부모자식으로 만났다는. 그 말씀을 이제 이해할 듯 싶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하루하루가 수수께끼처럼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