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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아퍼!

능엄주 2021. 7. 9. 22:26

죽도록 아퍼!

 

장례식에 다녀온 후 나는 죽기살기로 앓았다.

코로나19로 그다지 문상객이 붐비지 않는 장례식장에 빵, 빵,  틀어놓은 에어컨이 문제였나. 내 설움에 겨워서  속절없이 눈물을 펑! 흘려서인가. 엊그제 동생집에 가서 함께 수박을 먹었는데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동생이 불쌍해서 잠을 설쳐서인가. 나는 전신에 한기가 나면서 골머리가 지끈거리고 팔다리가 따로 놀았다.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잤다. 아침에 자고 점심때도 자고, 저녁먹기 전 또 잠을 잤다. 잠을 잔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잠을 깨면 몽롱하고 아련했다. 동생의 죽음은 생각할 수록 큰 충격이었다. 2019년에 우리 아버지의 여섯째 딸.  2020년엔 셋째딸, 2021년은 넷째 딸이 타계한 것이다. 셋 모두 당뇨가 직접적인 사인死因이었다.

 

나 어릴 때 우리집의 운동장 같은 부엌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항아리가 묻혀 있었다. 냉장고가 세상에 없던 시절  그 항아리에 고기를 저장했다. 우리 동네 무석이 아버지는 무슨 때가 되면 쇠고기를 부위별로 한 짐씩 지고 와서 그 큰 독을 가득 채우곤 했다. 어머니는 심줄로 쫄깃한 장조림을 만들었고, 살고기로는 불고기 양념을 해서 숯불에 구워 상에 올리곤 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여럿 낳았으므로 일년 열두달 내내 가족들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미역국과 함께  불고기와 장조림을 생일상에 빠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늘 요리를 하고 있었고, 맛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그래서일까. 형제들이 고기를 유난스레 선호해서일까.  당뇨병은 반드시 고기를 좋아한다고 걸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당뇨병 걸린다고 타고난 제 명命을 못 살고 가는 이치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몇 날 며칠 슬퍼서 다른 무엇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강원도에서 같이 지낸 시인이 '소설 쓰기를 단념하신 거예요?' 라고 물었지만 단호히 아니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두를  못내고 있다.  '퇴근시간 되면 지하철 붐빈다. 그만 집에 가라'던 동생의 음성이 내 귓속에 아직도 쟁쟁 울리기 때문이다. 말소리도 분명했다. 그날따라 왜 나에게 얼른 집에 가라고 했을까. 동생보다는 내가 덜 아프니까 나는 동생의 팔을 붙들고 오래도록 주물러 주었다. 내가 힘들어 보였던가.

 

흘린 눈물의 양 그만큼 기운이 탈진, 기운만 소진된 게 아니라 매사 의욕이 스러졌다. 한 사람의 삶의 내용이 고작 그렇게 마감되는 것에 대해서 실망과 상심이  컸다. 내 가까운 혈육의 죽음이어서 그 부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 어머니 시대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나라에서 상도 주었다. 우량아를 선발하여 다산을 장려하기도 했다. 다른 집들은 초고령의 형제들과 젊은 형제들이 고루 생존하는데 우리집은 이 무슨 재앙인가, 누가 내리는 형벌인가. 전생의 어떤 업보인가.

 

슬픔에 겨운 사이 겨우 지탱하던 건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주춤했다. 주춤하다보니 오늘에 이르렀고 이제 병원 출입은 끝이다. 동생이 병원을 가지 않아서, 유명한 의사의 치료를 거부해서 타계한 것은 아니었다. 동생은 수년 간 병원 치료에 돈을 퍼부었다. 쾌유의 희망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병은 본래부터 자신이 만들었으니 병을 고치는것도 당연히 본인 몫이 아닌가. 우리 몸에는 치료하는 의사가 있다고 한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 천하의 진리 선언아닌가. 동생의 당뇨병도 그런 증거 아니겠는가. 

 

나으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으면 사경을 헤매면서도 소생하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동생은 어쩌다 저승사자를 영접했더란 말인가. 온몸이 죽도록 아픈가운데 해가 저문다. 얼마나 더 아파야 죽음에 이르는 것일까. 요단강을 건너간 동생의 아픔은 대저 어느 정도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