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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

능엄주 2021. 5. 29. 23:01

기도하는 마음

 

유튜브에서 요즘 '자주 내리는 비가 한강에서 사망한 고 손정민 군의 눈물'이라고 댓글을 달은 것을 보았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은 것. 하늘도 속속들이 부패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고 기가 막혀 울고 있는 것일지도.

불의의 사고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그 의대생을 생각하면 일상을 정상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을 만큼 그 사건은 엄청난 트라우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감히 일어나서는 안되는, 도저히 일반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비가 하루 건너 오고 그것도 온종일 바람까지 가세하여 오게 되면 심신은 더 괴롭다고 아우성치게 된다. 비 오기 전날 밤과 비 오는 아침이, 이처럼 힘들 때는  왜 살아? 부실한 이몸으로 어떻게 살아? 아프기나 할 거면 차라리 가버려! 내면에서 강렬하게 울부짖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162cm의 장신이 방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배째라! 나는 못 일어난다! 라고 저항을 하는 모양새다. 교통사고 그런 것 안 당해도 점점 신체의 기관부위가 낡아가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수 년 동안 병원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2019년 여름, 미국 독감을 앓으면서도 초기에 한두번 동네 병원에 가긴 갔다. 낫는 기미가 없어 석달을 약도라지 더운 차 위주로 지냈으며 결국 나았다.

 

현재의 내 상태는 혼란 그 자체다. 진단명이 나왔고 치료 받으면 무슨 진도라는 게 보여야 당연한 게 아닐까. 교통사고 환자라고 흔한 병명 몇 개 붙여놓고 대충 두들겨 맞추는 것은 아닐까. 여러 형태의 치료방법을 다 동원하고. 시간도 그만큼 흘러갔으나, 치료는 기존의 업무로 복귀하고 싶은 열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치료스트레스로 불러도 가능할  것 같다.

교통사고로 단순히 몸의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와 충격을 받은 것,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몸뿐 아니라 마음은 더 아픈 것이다. 전기기구로 물리치료하고 무슨 성분이 함유되었는지 알 수 없는 한약과, 진통소염제 항생제 항우울제 근육이완제 등, 화학 성분의 양방 약처방으로 쉽게 해결될 요소가 아닌 듯하다.

 

"좀 어떠세요?" 닥터가 물었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게 아퍼요. 어제 병원에 오려고 했는데 너무 아퍼서 주저앉았어요.

 비바람 험한 날 어쩔 수 없이 지하철타고 버스 환승, 왕복 4시간 여 걸려서 정형외과에 갔다. 왕복 4시간이 적은 시간인가. 막대한 시간 소비다. 내가 고민끝에 선택한  정형외과로 옮겨 조금이라도 위로와 안정을 누린다면 이미 병자로 길들여진 게 아닌가 싶어 황당하다.

 

병원에서 나오자 멀쩡한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집 나설때는 햇볕이 쨍쨍해서 양산을 챙기지 않았다. 이 비도 고 손명진 학생의 눈물일까, 그런 생각에  비를 맞는 기분이 숙연해진다.  소나기는 이내 그치고 .햇빛이 반짝 빛난다. 

 

버스를 기다리며 쥐똥나무 꽃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눈과 코가 즐겁다. 그 어느 해보다 꽃송이가  풍성하고 향기롭다. 그들이 단체로 매혹적인 향기를 발산한다.  꽃송이마다 꿀벌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있다. 꿀벌이 때를 만난 것일까. 아! 하고 나는 잠시 마스크를 벗고 벌을 피해 쥐똥나무 꽃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마신다. 꽃향기를, 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어 스스로 가상하다 할까. 

 

고작 3분간  눈 한 번 깜박할 사이, 힐끗 쳐다보고나서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짧은 두세마디 말,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면담 , 검사지와 약처방전만 던져주지 말고, 제발 5분, 10분이라도 래원한 환자의 면상을 살피며 아픈 사연을 관심있게 들어주는, 의사를 만나면 숨구멍이 좀 트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의사의 배려, 친절한 한 마디로도 병은 쉽게 치유될 수 있다. 본래 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돌아오는 월요일에다 기대를 걸고, 인생 24개월 차 도하영 가족의 유튜브를 보면서 마음을 달랜다. 또한 고 손명진 의대생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아들잃은 부친의 침착하고 지성적인 처신이 눈물겹다. 의식이 살아있는 분들의 댓글에서도 많은 위안과 힘을 얻는다. 나는 쥐똥나무 꽃향기가 더 오래 더 멀리 지상에 남아, 두루 퍼질수 있도록 기도드렸다. 올해 쥐똥나무 꽃이  일찍 피어난 이유가 있을 듯 해서다.

 

쥐똥나무꽃이 피어나면 어린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던 가장 서민스럽고 사람냄새 물씬 나던 그사람을 기억한다. 나는 그분에게서 좌도 우도 아닌, 오직 따스한 사람의 온기와 향내를 발견했던 것일까. 5공 청문회 당시  초선의원임에도 그분의 용기와 기백, 탁월한 식견과 혜안, 신랄辛辢하고 예리한 질문에 매료되었다. 문화센터 소설 공부도 결석한 채,  TV 앞에 좌정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질의문답을 노트에 일일이 기록했지 않은가. 

 

나는 그분을 생각하며 쥐똥나무 꽃을 그윽히 바라보았다. 고 손명진 대학생의 죽음에 댓글을 달은, 시민 모두가 정직하고 과감하기를!  정의롭기를! 더하여 쥐똥나무 꽃이 오래 견디어 시방법계로 향기를 드날려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빌었다.

 

기도하는 마음의 참 뜻은 무엇인가. 기도로 산란지경에 이른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버스가  장미꽃으로 어우러진 책향기 마을을 지날 때 햇볕은 더욱 빛났고, 내 마음도 덩달아 활짝 밝아 지는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