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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일이죠?

능엄주 2021. 5. 26. 16:37

이거 무슨 일이죠?

 

나는 명랑하고 상쾌하게 오늘 하루를 잘 지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명랑도 상쾌도 다 좋은 뜻을 가진 낱말이 아닌가.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지만 정형외과에 다녀오는 동안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소담하게 꽃구름을 이루었던 회화나무꽃이 지고나서 연도에는 망초와 강아지풀, 애기똥풀, 씀바귀가 저마다 꽃을 피우고, 쥐똥나무꽃 또한 때에 맞게 조용히 은밀하게  피어나 제 존재를 드러내듯, 향기가 코를 찔렀다.

원치 않는 병원 나들이,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반 강제에 의한 환자노릇하러 정형외과 가는 길에서 여러 형태의 여름꽃들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마음이 십분 가벼웠다.

 

"좀 어떠세요?'

 D.R가 질문했다.

- 네! 목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원장님! 이거 무슨 일이죠? 얼굴에 쥐가 나요!

"글쎄요. 약이 과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치료 스트레스일 수도, 저로서는 뭐라고 딱히 답변을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약은 있으시죠? 주사맞으시고 목하고 허리  물리치료 하세요!"

 주사맞고 목과 허리부분에 핫팩, 안마 30분.  그 30분이 매우 느긋했다. 무엇보다 목과 허리 부분에 따끈따끈한 핫팩이 심신을 편안하게 유도, 한방에서 엎드려 침맞는 것보다 반듯이 누우니 자세부터 다르다.  2차로 전기기구를 통증부위에 붙이고, 다시 30분. 주무르고 조이면서 근육을 이완시키는가. 마지막으로 원적외선까지, 1시간이 지나자 치료는 끝났다.

 

병원에서 나오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집에서 손수 가꾼 딸기라며  나를 전부터 아는 것처럼 다가와 딸기를 사라고 권한다. 나는 두말 없이 그 할머니의 딸기와 상추를 사들고 집에 왔다. 집에 오기 무섭게 나는 왜 노다지 허기가 지는지. 사흘 굶은 사람처럼 서둘러 찬밥에 머위 쌈을 쌌다. 전생에 절밥을 먹었던가. 머위잎, 취나물, 상추, 시금치, 다시마, 미역, 배추고갱이, 무엇이건 밥을 쌀 수 있으면 통도사 서운암에서 제조한 매실 고추장에 그 쌈 한 종류만으로도 나는 밥을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국은 아예 데우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양실조인가. 왜 어지럽지? 왜 얼굴에 쥐가 나지? 원기 부족? 이런 현상을 어느 의사가 바로 알아보고 치료해 주었으면. 그런 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잠을 자려고는 약을  먹지 않는다. 약이 독해서 까무라치고, 몽롱하고 늘어지고 위장 쓰리고 무작정 잠을 퍼자고 나면 멍청한 바보가 된다.  입천장이 바삭바삭 말라서 물을 연속 먹어도 속이 타들어간다. 약 때문에 오히려 더 어지러운 것 같고, 색색의 약 성분이 나에게 버겁게 여겨진다. 대체 이 증상은  내과냐 신경과냐, 무슨 과를 찾아가야 바르게 찾아가는 것일까.

 

눈이 감기는 듯, 붓는 듯 불편한데 졸리지는 않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지하철에서 인사불성으로 잠이 들을까 무서워 약은 부득이할 때만 먹는다. 먹더라도 한 두 개 빼놓고 먹으니 잠이 퍼붓지 않는다. 시간 널널하여 도하영 가족이 출연하는 유튜브를 보며 힐링의 시간을 누렸다. 어찌나 단란하고 화목한지, 시청하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한다. 연우 하영 남매는 총명하고 사랑스럽다. 보고 또 보아도 즐거웠다.

 

"이모! 치료 잘 받으세요. 합의는 천천히 신중하게 하시고, 아픈 데 치료 받으시는게 더 중요해요."

S의 카톡에 내가 답했다.

-치료가 그게 그렇다! 차라리 다 그만두고 시골가서 쉬고 싶단다. 병원 갈수록 나는 미로야. 오리무중이란다. 없던 증상도 새로 튀어나오는 것 같아.

"저도 아직 치료 받고 있어요."

S의 직장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때여서 일주일에 한 번만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가자고 해서 그녀가 나와 동행하다가 차도 망가지고 고생하고 있다. 뒤에 오던 화물차가 우리 차를 박치기 했을 때 나는 어지러워 얼른 내다볼 수가 없었다.  어디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 번개같이  경찰관이 나타났고, 곧 이어서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보험회사 사람들이 등장했다. 나는 S가 혼자서 모두 남자인 그들을 응대할 게 걱정되어서 비척거리며 찻길로 내려섰지만 S를 도울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창밖에 바람 험해지고 하늘 새까맣다. 단풍나무, 목련나무 개살구나무 가지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자주 비가 내리면서 마음까지 눅눅하게 한다. 어쩌다 나는 병의 올무에 걸려들었나.  

'이거 무슨 일이죠? 얼굴에 쥐가 나요!'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해 줄 의원醫院은 어디에 있을까.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러나 웬지 밤늦도록 힘이 났다. 귀여운 하영이를 보면서 유쾌하게 웃었기 때문인가. 그들 가족을 보는 게 최고의 힐링시간이 되었다.

 

그래, 삼재는 지나가라. 나는 애써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삼재탓으로 돌리며 무소불위 전지전능한 부처님께 하느님께 문제를 몽땅 내려놓는다. 전폭적으로 일임, 맡기고, 바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어떻게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