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파는 아가씨
그꽃만 사가시면 그리운 영 난꽃
아아 꽃잎처럼 다정스런 그사람이면
그 가슴 품에 안겨 가고 싶어요
1950년 대 초. 전후의 시가지는 음울하다 못해 푹 갈앉아 있는 듯했다.
청주시의 몇 안되는 건물과 상점들은 시나브로 문을 열기는 했으나 거의 철시상태를 면치 못했고, 집들은 폭격 맞아 귀신스럽고 우중충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당장 끼니도 해결못하면서 어디서부터 무엇을 손 보아야할지 아득했을 터였다. 그러할지라도 사람들은 끼니때가 되면 아궁이에 불을 잡혀 맹물이라도 끓여 빈속을 채워야 했던 시절이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로 옆집인 진구네가 몽땅 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에 비하면 그나마 천우신조였을지.
사랑방과 뒷방쪽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반이상 타다 남은 흉한 몰골이었다. 지붕도 주저앉고 서까래는 거뭇거뭇 불에 그슬린 자죽이 선명했으며 대문조차 날아가고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이북에서 남하한 피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우리집의 사방 모서리에 천막 비슷하게 둥지를 틀고 고만고만한 어린 것들과 함께 기약없는 피난살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구원의 깃발이었을까. 날이면 날마다 전후의 살벌한 풍경을 뚫고 청주극장에서 들려오는 '홍콩아가씨' 는 본래 그바닥에 살던 사람들과 그리고 이제는 흉허물도, 체면도, 염치도 없게 된 마치 친척인 양 담뿍 친해져버린 피난민들의 비감한 가슴 속을 속속들이 파고 들었다.
학교가 문을 열기는 했으나 행방불명된 선생님은 물론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게 되어 학교에 가나마나 공부란 게 될리 없는 뒤숭숭하고 불안한 시기였다. 정오쯤 되면 청주극장에서 어김없이 '홍콩아가씨' 가 흘러 나왔고 그 노랫소리는 당시 인구 10만이 채 될까 말까한 청주시 일대를 휩쓸다싶이 하였다.
'홍콩아가씨' 가 청주시를 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더 얼마나 삭막했을 것인가. 교실에 앉아서도 국어책 위에 홍콩아가씨요. 아궁이에 불집히며 밀가루떡을 구워 먹으면서도 홍콩아가씨였다. 장터 해장국집에 모여 앉은 아저씨들 막걸리잔에도 홍콩아가씨는 둥둥 떠 있었다. 내 언니또래 막 소녀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피해자로서 차라리 임춘앵 악극단 배우가 되고싶어 홍콩아가씨를 기를 쓰고 익혔을 테고, 나의 두 오라비를 비롯한 동네 머시매들은 서커스 단의 야미 표도 얻지 못해 개구멍을 들락거리면서도 홍콩아가씨를 흥얼거렸을 법하다.
'홍콩아가씨'의 주인공은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미모를 유지 간직하고 있는 금사향 가수였다.
전후의 백성들에게 핑크빛 황홀한 꿈을 꾸게 했던 그 여인은 8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말솜씨도 유창한데다 밝고 유모러스한 모습이 분홍색 한복과 함께 활짝 핀 진달래꽃이었다.
당시에는 보국 보훈의 마음으로 목숨걸고 노래를 했는데 지금 원로가수들의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토로하셨다.
평양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공부도 할만큼 한 노가수의 고단한 삶이 짐작되어 안타깝기만 했다. 옛날에는 가수될 사람만 가수가 되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노래만 부르면 가수라고 하셨다. 꼬집기 위한 말씀은 아니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음직 하다.
한 번도 홍콩에는 가본일은 없으시면서 '홍콩아가씨' 로 이름을 날린 금사향 가수.
청주시민 모두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어린 우리들까지 아무 때나 어디에서나 '홍콩아가씨' 를 익숙하게 부를 수 있게 한 장본인.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불현듯 나는 내 언니가 겪어낸 6.25를 떠올렸다. 피난민들의 슬픔과 부모님들의 우수를,
그리고 진구네 우물물이 폭격으로 못먹게 되자 동네 언니들을 따라 물동이 이고 멀리까지 물길러 다니며 물을 질금질금 다 쏟아버리면서,
어떤 날은 물동이도 깨 박살내며 부르던 '홍콩아가씨' 를 추억했다.
전쟁은 잊혀져 가는가, 그러나 '홍콩아가씨' 가 건재하는 한 그 시절의 아픈 체험은 귀중한 글감 소재로서 장차 더욱 빛을 뿜어낼 듯하다.
금사향 가수는 "대중가요 가사가 철학이야" 라고 하셨으니 그 노래 속엔 시대와 인물, 역사와 사건의 흔적이 있다.
6월이 저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6월이 아니던가.
TV 에 출연한 '홍콩아가씨' 를 부른 금사향 가수를 보면서 여태도 저리고 시린 내 마음을 의식한다.
이 꽃을 사가세요 홍콩의 밤거리
그사람 기다리며 꽃파는 아가씨
오늘도 하나 남은 애달픈 영 난꽃
아아 당신께서 사가시는 첫사랑이면
오늘도 꿈을 꾸는 홍콩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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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
09-06-28 2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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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아가씨가 6.25전쟁을 겪던 시기에 나와서 많이 듣고 따라 부르셨군요. 가요는 묘한 마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노래를 들으면 당시 듣던 장소와 분위기까지도 많이 생각나니까요. 노래에 얽힌 글을 읽으니 생각이 나는데, 저는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들으면 강원도 오음리 군인극장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때 대여섰살 꼬마인 오은주가 부른 노래로 기억하는데, 부대에서 일과를 마치고 나면 그노래가 극장에서 들여오곤 했지요. 문득, 그 생각이 스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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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28 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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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회장님
밤이 깊었는데 왜 여태 안주무십니까? 어제 이 시간보다 오늘 밤이 훨 시원하여 글쓰고 계셨습니까? 그래요. 가요마다 추억이 있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이런 추억이 저 노래를 부르면 저런 추억이. 그래저래 사는 맛이 나는지도 모르지요. 기분이 묘한 날은 글을 쓰게 됩니다. 떠난 사람들이 그리워지고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화정 변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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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
09-06-28 2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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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밤늦게 잠 안자고 로그인하는 사나이가 또 있습니다.하하하 ! 저는" 울어라 키타줄아"" 비내리는 호남선"" 하룻밤 풋사랑" 등 흘러간 옛노래가 들리면, 내고향 저 어릴 적 가설 극장이 떠오릅니다. 포장으로 사람이 못들어오게 빙둘러치고 영화상영을 하던 가설극장, 그렇게 영화가 들어오는 날은 어김 없이 찢어질듯한 확성기 소리로 그렇게 흘러간 옛노래가 나오고 내가슴은 쿵닥거리고 그랬죠.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큰댁 고모나 아는 사람이 나를 덥석 끌고 들어가면 영화를 보고, 기다려도 오는 사람이 없으면, 기다렸다가 포장뜯고 마지막 장면이라도 보고 돌아와야 적성이 풀리던 내 초딩 어린시절이 떠오른답니다.그때 본 영화들이 "마부"" 눈내리는 밤" "가거라 슬픔이여" "논개" "그리움은 가슴마다" "가는봄 오는봄" 등등입니다. 변영희 선생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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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
09-06-29 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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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표현을 해야 옳을까요? 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잠이 안온다니까요 산유화라는 영화를 그때 보았는데. 선생님과 제자에 대한 사랑이라 이야기 했더니 제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너는 사춘기가 빨리 왔구나 이러시더라구요. 그때 전 너무나 조숙했고, 학창시절에 너무나 늙어서 지금은 늙을게 없답니다. 한 번 보세요. 제가 뭐 늙은인가 사춘기 그 시절이지요 ㅎㅎㅎ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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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29 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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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오밤중 한 밤중에 로그인하는 왕송호수 작가님. 이리 호칭해도 되겠습니까? 극성스레 바람불던 밤에 님이 부른 왕송호수 부르스?는 일품이었습니다. 사람의 매력이란 것이 완전히 순진무구에서 나온다는 정설을 믿어야 하겠지요. 전적으로 외양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무슨 이론을 펼치고 있지 지끔? 하하하 허물없는 그대 문학동지에게 감사를. 얼른 건강하세요. 화정 변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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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
09-06-29 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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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미칠 것만 같은 그 밤 잊지 못합니다. 그 추억 고이 간직하렵니다. 일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추억을 들라면 서슴없이 그 왕송호수의 바람을 들겠습니다. 왜 그리 바람은 불어대는지 철새들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는지 ㅎㅎㅎㅎㅎ사랑은 그 무엇인지 ㅎㅎㅎㅎ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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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원 |
09-06-29 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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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아가씨에 대한 소감을 잘 읽었습니다. 아침마당에 나왔던 금사향 여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월을 엇비슷 살아온 사람들이라 생생하고 감동적입니다. 바람이 유달리 불던 그날 밤에 왕송 호숫가에서 불러 재치든 임재문 선생님의 매력적인 노래 자세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영희 선생님의 머리카락 흩날리던 그 아름다운 모습도 일품이었습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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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29 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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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모종의 꿍꿍이 같은 것도 약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습도 높은 밤의 왕송호수. 미친 바람 불던 왕송호수의 밤에 대하여. 거 참 지내놓고 보니 일품 추억아닙니까? 느닷없이 화계사를 돌아본 날, 그 긴 숲길을 걸어나와 허둥대며 달려 갔던 왕송호수의 밤은 호방한 기운의 윤행원 선생님의 밤이었고 천진한 동포들의 밤이었습니다. 문학이 수필이 있어 즐거운 사람들. 선생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여름 지내시기를 빕니다. 花井 변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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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
09-06-29 1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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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이 의왕 왕송호숫가에서 모종의 미팅이 있었던듯 합니다.
임재문 선생님이냐 순진무구의 그대로의 미성이고, 석계선생님은 한국의 폴포트이며
변선생님은 나이드셔도 미인이시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만 합니다.
좋은 우정 이어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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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성철용 |
09-06-30 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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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불러일으키는 글 읽습니다. 4.19 무렵 1년간 청주여상(구 신라여상)에 근무하다가 군인을 갔거든요. 무심천, 청주극장, 십자 다방 등을 전전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던 기억을 생생하게 하네요. 그 당시의 제자들이 지금은 68~9 쯤 되었으리라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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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30 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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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주여고 졸업하던 날 큰 오라버니에게 이끌려 황망히 서울 오느라고 고향이지만 제대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성철용 선생님처럼 여중 때 아침 저녁 건너던 무심천의 서문다리, 그리고 무심천 뚝방의 벚꽃나무, 졸업 예술제의 추억이 서린 청주극장과 현대극장, 새로 생긴 산라여상, 우리들의 앨범을 제작하는 예술사진관.대개 그 정도이지요.감사합니다. 찌는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빕니다. 謝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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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
09-06-30 1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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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생님,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전 한참 나중 세대이지만 당시의 궁핍하고 신산했던 삶의 자락이 눈 앞에 펼쳐 지는듯 합니다. 선생님의 추억보단 십 수년이 지난 한참 후의 일로 사료되오나 동네 담벼락에 붙어있던 '꿈은 사라지고(문정숙 배우가 항아리 같은 것을 안고 꿈꾸는 눈으로 45도 얼짱 각도로 처다보는)' 포스터가 생각납니다. "나뭇잎이 잠드는 날엔~ 뭉게구름~ " 노래는 최무룡 배우가 불렀던 것 같고요.
변선생님, 이 후배가 보기에도 옛 대중가요들은 하나같이 노랫말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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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30 2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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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의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한 가지 일을 제쳐 놓으니 남산 <문학의 집. 서울> 에도 가고 글도 올리고 서면으로나마 선생님도 뵙습니다. 다시 어떤 회오리에 말려들면 숨도 못 쉴 상황이 되겠지만... 화정 변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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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
09-07-04 0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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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노래입니다. 요즈음에는 어떤 노래가 점점 삭막해져가는 마음에 힘과 위로를 줄까요. -물동이도 깨박살내며 부르던 '홍콩아가씨' -와 같은 응원가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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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7-04 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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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살구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여름. 어릴 때 신나게 부르던 가요가 떠오르고 가사는 희미해졌지만 흥얼흥얼 따라부르면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아직도 낭만, 아직도 그리움과 추억. 그 시절 그 때를 회상하며 쓸 수 있는 글 수도 없이 많을 듯 합니다. 마당 쓸다가 빗자루 내던지고 화단가에 비켜 앉아 저무도록 부르던 노래들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중국드라마 [안개비 연가]의 백장미 노래도 그 음감이, 그 가사내용이 한 편의 글감이지요. 이진화 선생님 이렇게 글로써 만나게 돼 감사드린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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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 |
09-07-08 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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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래는 어떤 추억의 공간을 환기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홍콩 아가씨’가 힘든 나날이었지만 지나가버려 아련한 그리움에 젖게 하는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군요. 요즈음 노래를 듣다보면 아이들이 커서도 위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노래가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예전 노래는 템포는 느리지만 삶에 밀착해 삶과 더불어 있었습니다. 저는 목포의 눈물, 비 내리는 호남선, 신라의 달밤, 김세레나데의 노래 등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덕분에 먼 추억에 젖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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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7-08 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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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김 광 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전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 가 외로운 밤이면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白鳥가 오는 날 이 물 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깊고 그윽한 별자리못, 칠불사 밑에 있는 그 연못은? <별자리못 전설>의 작가에게 시 한 편을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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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7-18 2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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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中에 교보문고를 갔습니다. 내 책이 잘 있나 안부도 궁금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사러.선생님의 <별자리못 전설>이 새로 단장한 수필코너에 있더군요. 한참만에 간건데 한국수필을 우대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내가 아는 분의 수필집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는 말씀 전합니다. 이모 저모로 책방 나들이의 소득은 풍성한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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