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써!
그만 써!
그만 써! 이게 마지막이야. 너무 고생스러워. 몸이 막 무너지는 것 같아. 글 쓴다고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날이 새는지 달이 뜨는지도 모르잖아. 태양이, 달이 문제가 아니라 노상 끼니도 잊고 살잖아. 밤잠도 푹 못 자는게 일상이 돼 버렸잖아. 일단 발동이 걸리면 완전 미쳐돌아가는 거지. 몰입, 몰두가 이거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는 위험 인자라고.
그렇게 해서 너는 무엇을 이루었지? 자신에게 질문하면 어떤 답이 나오는지 알아? 너무 고달프다. 죽도록 지친다. 그말밖에. 어려서 내 고약한 담임선생님이 입학원서를 안 써주는 바람에 인생 최초, 첫번째 단추가 엉뚱한 방향으로 꼬여버린 거라고. 번짓수를 잘못 찾아들어간 거리고, 그 시대, 그 지역 정서로는 그게 옳았는지 몰라도 그건 절대 아니었어.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그릇이 다른데 어찌 일률적으로 사회 통념에 꿰어 맞추려고 하냐는 거지.
내 어머니는 자존심을 팍! 아래로 내려놓고라도 통사정, 읍소泣訴 해서라도 그 세력에 굴복하더라도 말이지, 딸의 장래를 고려했어야 한다는 거야. 대체 이게 뭐냐고? 고작 이 꼬라지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거면 너무 잔인했어. 사람을 제대로 관찰하고 판단했어야지. 열두서너살 된 어린 여자애가 당시의 시국이든, 부모님의 수난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어. 시키는 대로 순종했을 뿐인데. 결론은 한심해!
아무리 어려도 내 고집 내 주장, 내가 지향하는 바를 통찰하고 밀고 나갔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왜 떼 한 번 못 쓰고 제 의견 개진도 못하고 그냥 질질 끌려갔냐고. 그렇게 한이 쌓이다보니 기어들어간 게 글쓰기 감옥이었어? 한 번 엎어지면 무간지옥처럼 출구가 안 보이는 무저갱. 고문의 구렁텅이. 소리쳐 구원을 요청해도 지옥문이 열리진 않아.
그토록 힘든 수렁을 탈출하기 위해 투쟁한 결과가 오늘의 내 형상이라고. 내 몸이, 내 영혼이 수시로 제안해온다. 그만 써! 너의 글 감옥보다 더 신나는 곳, 더 행복한 곳, 유채꽃 평화로운 들판도 너는 숫제 모를 걸. 그런 곳, 유토피아, 찾아보면 만날 수 있어. 제발 그만 두어! 명예? 그 까짓 거. 돈?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지. 돈이 뭔지도 몰랐으니까. 수십 년 동안 이 두꺼비놀음이 대체 뭐였어? 땅을 열나게 파다보면 각종 영양분이 응축된 인삼뿌리라도 씹을 수 있으리라고 믿은 거였던가.
그래도 감사해라! 사람향기 나는 좋은 분들 만났잖아. 내 주변의 모두에게 고마워! 나는 잘하고 있어. 더 잘 할 수도 있어. 이렇게라도 나를 고무시켜야 해. 어쩌겠어. 멈추면 보인다고? 그건 현재의 나에게 해당사항이 아니야. 멈춤은 퇴보야! 후진은 바람직하지 않아. 계속 앞으로 나가야만 해. 지난 일은 돌아볼 필요조차 없어. 노상 반애들 앞에서 어린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고 봉변을 주던, 저질 담임 선생은 강물에 던져라. 입학원서 써주지 않았으므로 오늘의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있는거 아니겠나. 중요한 건 지금, 여기, 현재야! 가자! 더 높은 곳, 희망의 저 언덕으로. 기막힌 소재를 만났으니 특출한 문장 발휘로 나 자신을 발양시키자!
미움도 절규도 이젠 소용없어.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꿈꾸는 자가 꿈을 이루고. 행동하는 자가 고지에 다다른다고 했어. 쌍화탕 한 잔에 뒤숭숭한 내 생각은 급선회하는가. 급선회 아니고 당찬 결의지. 자신에 대한 엄중한 서약이지.
이제 잠깐 나갔다오자. 꽃샘바람 변덕스러워도 거리로 나가보자. 내 생각에 오류가 없는지. 내 의지가 시험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유유자적悠悠自適, 포행匍行으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