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주 2020. 11. 8. 09:00

주말은

 

매주 주말은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쌀밥 한 그릇이, 쌀밥에 어울리는 포기 김치 한 조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 날이다. 다른 반찬은 몰라도 김치 만큼은 어머니 배안에 있을 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음식일 것이다. 무슨 음식을 먹든, 예를 들면 라면 종류는 말할 것도 없고, 찐빵, 고구마, 막걸리, 족발, 순대, 삶은 계란 등을 먹을 때도 김치만큼은 언제나 한 접시 올라와야 제격으로 알았다. 찐 고구마가 찐고구마 맛을 제대로 내고 그 맛의 진가를 더하기 위해서도  잘 익은 배추 김치는 꼭 필요한 품목이었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다. 워낙 집밖 음식이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해서 입맛이, 선호도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유독 김치 없는 밥상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데 주말에는 김치만 빠지는 게 아니었다.  밥 대신 식빵을 구워 쨈을 바르거나, 계란 후라이를 얹어먹는 게 일반화 되었다. 한 조각의 김치가 더욱 절실해지는 기간이 바로 주말이다. 따라서 늘  품격있는 음식을 조리해주는 분들에게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기도 하다.

 

해가 짧아 지면서 나는 가능한 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오가는 시간도 절약할 겸 아침을 생략하려고 했다.  며칠 해보니 밤 늦은 시간에 속이 출출해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계란만 먹기로 정했다. 식빵을 먹든 계란을 먹든 김치 한쪽이 그리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사과와 귤, 혹은 말린 클렌베리로 김치를 대체했다.  임시변통은 겨우 되었으나 칼칼한 고추가루로 버무린 김치 맛에 비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에게 좋은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주는 토지문화관, 직원들(고 박경리 선생님과 그 가족), 그리고 그 사업을 지원해주는 정부 기관에게 새삼스럽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창작 작업에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오로지 각자의 작업을 위해 모든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다른 조건들에게도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일요 아침.  4시부터 노트 북 앞에 앉아 있어 시장기가 든다. 빵 한 개를 치즈에 싸 먹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토지문화관에 머무는 2020 庚子年 가을이 내 인생의 황금기로 찬연히 빛나기를. 그리고 내 인생에서 존경해 마지 않는 [남해의 고독한 성자]가 완성되는 결실의 계절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 되면 바야흐로 아침 저녁 오가며 바라보던 마로니에 잎이 다 질 무렵 나는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