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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감기

능엄주 2020. 8. 30. 09:45

여름 감기가 어렸을 때 말라리아 침투하듯 이 여름 나를 또 공략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가 걸리도록 무엇을 열심히 하거나 특별히 몸을 혹사하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일이 없는데 느닷없이 다시 맹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책을 읽느라고 밤을 몽땅 지새운 기억은 있다. 읽어지는 책, 궁금한 스토리, 잘 아는 동료의 책이었다. 책이 우리집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끌리는 책 - 그게 책 표지라든가, 제목이라든가 또는 내가 평소에 관심있게 눈여겨 본 작가의 책이든, 아무튼 읽는데 막힘이 없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도 그 포장지를 뜯는 순간, 아무 연관성있는 사연도 없이 그냥 아, 이 책 괜찮네! 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느낌, 사람에게만 첫 인상이 꼭 중요하다고만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 있다는 이야기다. 집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미지의 장소에 갔을 때 보이지 않게 전해오는 어떤 기운이랄까. 그런 게 분명 존재한다고 여긴다.

 

남들은 그 책의 제목이 수필식이라든가, 시집 제목 같다고 말했지만, 나는 어떤 영적인 분위기마저 느꼈다면 내가 이상한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녁 늦게 손에 든 그 책을 날이 훤하게 밝아서야 무려 5시간에 걸쳐 나는 완독을 마쳤다. 책을 읽으면서 날이 밝았다는 것은 글쓰는 게 주업인 나에게는 자주 발생해도 좋은 일에 속했다. 최명희의 '혼불' 10권을 읽을 때도 나는 밤을 여러 차례 새우는 기록을 남겼다. 그외 열거하자면 더 있지만 그게 무슨 훈장이나 된다고 내세우느냐? 이거다. 작가라는 반열에 든 사람이라면  끌리는 작품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수다한 각양각색의 독서 경험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일 터이다.

 

밤새운 그후부터 콧물이 주르르 쏟아지면서  재채기가 연속 터졌다. 기침도 내 부실한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어 숙면을 방해했다.  아! 또 감기야! 이거 어쩌나? 토요일 오후,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절망스러웠다. 또 한 편 요즘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는데 함부로 병원에 가서도 안될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코로나19 음성, 양성 중 하나가 내  감기 증상에 덧씌워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컸다.

 

나는 무조건 밥을 새로 지어 따듯한 밥을 먼저 먹고 나서, 집에 있는 약 종류 중에 무엇을 먹을까 궁리했다. 감기약을 늘 준비하는데 웬걸, 이번에는 그 흔한 콘택 600, 레피콜 한 개 눈에 띄지 않았다. 작년에 여름독감을 100여일이나 호되게  앓고 나서 그 지독한 감기에 재차 걸리지 않을 줄 알은 것인가. 걸리지 않게 몸을 잘 관리하겠다고 결심한 때문이었을까.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더운 물이나 마실 수 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약을 사러 번화한 거리에 나갈 수도 없고, 의사 처방 없이 무슨 약을 사온데도 안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운 물이 한 컵 두 컵 내 식도를 흘러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곧바로 등줄기와 얼굴 전면에 냇물같은 땀이 주체못하게 흘러내렸다.  남아 있는 기운조차 냇물 같은 땀에 섞여 나를 더욱 지치게 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다. 치과 치료중이니 바이엘 아스피린도 내 마음대로 복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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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또 마시고 더운 물이 내 온몸에 소용돌이쳐, 입고 있는 옷이 소나기를 맞은 듯 척척하게 젖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오로지 더운 물로, 악랄한 여름 독감에서 해방되고자 원시적인 방법으로 안깐힘을 쓰는 꼴이었다. 거짓말처럼 차츰 몸이 개이는 기분이 들었다. 땀을 그렇게 많이 쏟는 과정에서 독감 바이러스가 더운물에 녹아 내렸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나는 그러나 다시 나에게 도착한 책을 또 읽었다. 이상스럽게도 요즘들어 책이 더 많이 배달되는 양상이었고,  무슨 책이든 손에 들고 읽어지면 끝까지 읽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읽어지지 않는 책은 장시간 붙들고 있어도 읽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 나에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엄마! 1시가 넘었어. 왜 여태 안 자?" 불이 훤하게 밝혀진 내 방을 들여다보고 딸이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시계를 보았다. 딸이 강제로 내 방의 불을 껐다.

나는 다시 더운물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떨어진 것이다. 은근히 겁도 났다 .' 내 병은 내가 다스린다'는 아니지만 궁여지책이라는 것도 있다. 날이 밝으면 일단 물부터 끓이자. 그리고 배가 출렁거리도록 더운물을 내 몸에 주입하자. 나는 다짐했다. 그렇게 마디 마디 힘든 코로나19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 코로나19가 나에게 깨우쳐준 지혜라고 할까. 그게 원시적이든 미개한 것이든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