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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아프다

능엄주 2020. 7. 31. 19:26

어렸을 때 배가 많이 아팠다. 이를테면 횟배라는 것이었다. 시내 중심에 유명한 초등학교가 여럿 있는데도, 내 부모님이  그 먼데를 국립이라고 보낸 게 잘못이었다. 시내에서 시오리 정도 떨어진 C시 외곽에 있는 학교 오가다가  주변에 널려 있는 삘기 뜯고 고양이 밥 뜯어먹고, 올미, 까치밥 온갖 풀종류를 먹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고양이밥이라는 건 한참 씹으면 껌처럼 찰지고 쫀득거려서 아이들이 무척 선호하던 식물이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는 없다고 해도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듯, 논 밭에 들어가서 닥치는대로 훌터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까시꽃, 산찔레, 목화송이, 밀 익는 철에는 밀밭에 들어가 밀을 끊어 손바닥에 비비면 껍질과 알맹이가 분류된다. 구수한게 맛이 향그러웠다. 얼른 삼키지 않고 껌을 씹듯 오래오래 입안에 넣고 즐겼다.

학교 오갈 때 산등성이로 논두렁으로 가다보면 볼 것이 많고, 뜯어먹을 풀이 지천이었다. 사탕수수대도 사정없이 꺾어서 그 거친 껍질을 까서 아작아작 씹으면 그 단맛은 요즘 어떤 과자나 사탕보다 달고 시원했다.

 

수수가 익을 때는 찰수수대를 꺾기도 하고, 김장 무도 쑥 뽑아서 손톱으로 까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것저것 먹는 종류가 하도 많아서 지금 다 열거할 수가 없다. 오며가며 먹다가 남으면 집에 가지고 와서 장롱 설합 한귀퉁이에 넣어놓는다. 삘기는 시들면 고소하고 배릿한 그맛이 증발하는데, 증발하기까지 그냥 두면 나중에 언니한테 들켜서 된통 혼이 난다.

 

그래서 나는 배가 아팠던 것이리라. 뱃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렸을 것이므로 공부시간에도 배를 움켜쥐고 수업이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집에가면 늘 지청구를 들었다. 제발 거지 짓거리 좀 그만하고 학교 끝나면 산으로 들로 냇물로 들개처럼 쏘다니지 말고 신작로로 집에 빨리 오라고. 보리밭에서 어린 애들 간을 빼 먹는다는 문둥이가 나온다고 위협도 했지만 나는 반애들하고 노상 그렇게 어울려 지냈다.

 

오늘 배가 아파서 병원엘 갔다. 며칠전부터 아랫배가 신경질이 날 정도로 사르르 아팠다.  이렇게 아프면 아무 일도 못하는데 하고 걱정을 했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었고, 누워서 편안하게 TV나 보고 있으면 배아픈 증세가 어디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그 지긋지긋 몸서리나는 병원엘 내가 간 것이었다.

 

논두렁길 산길 걸어서 학교 다니던 그 시절을 제외하고는 흙 묻은 올미나 매음뿌리를 먹은 것도 아닌데 왜 배가 아픈가. 아침에 밥은 따끈했고 고사리 된장국도 구수했다. 배 아플 이유가 없는데 ~ . 사유가 이름도 알 수 없는 약재를 사다놓고 나보고 기운빠질 때 닳여먹으라는 것을 안 먹어서 일까.

 

병원 들리고 약국 들리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오면서 나는 내가 한심했다. 병을 내가 부른 것이지 병이 저혼자 찾아온 것은 아니니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았다. 병원이, 약국이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내가 나를 방치한 게 원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