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나 까자
눈이 고달퍼서 요즘 실수가 잦다.
글자를 잘 못 입력해서 사전에도 없는 엉뚱한 글자로 둔갑하는 일이 발생한다. 오타도 예외로 많다. 이런 실수는 내가 나에게 용납이 안된다. 열일 제치고 눈을 쉬게 해야 한다. 눈을 잃으면 세상을 잃는 거다. 늦가을 즈음 기가 잘 모아져 몰입이 용이한 원주 집필실에 입주하면 평소에 소원하던 몇 권을 쓰고 먼 시골로 떠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좋은 환경에서 쉬면서 글쓰기다.
문학이니 창작, 소설, 그 범주에서 훌훌 벗어나 노상 갈망만 하고 실행하지 못한 자유의 삶, 이를테면 공부를 해도 그 무슨 상, 시험의 결과와는 전혀 다른 인간과 우주 공부, 폭넓은 독서로 유유자적 지내려는 의도에서다. 앞 뒤 마당에 화초와 채소를 심어두고, 자라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작은 생명들의 오묘함을 발견하는 맛있는 삶, 세속의 허욕을 몽땅 내려놓는 삶을 지향한다.
내가 아는 95세 할머니는 지금도 독서를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새로 나온 신간에서부터 지인들이 보내 준 책을 정독하고 독후감도 훌륭하게 써 보낸다. 년전에 침대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어 좀 오래 병석에 계셨지만, 보행이 다소 불편해진 것을 빼고는 거의 완벽하게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다. 전화 목소리가 얼마나 힘찬지, 얼마나 가슴두근거리게 멋진 말을 쏟아내시는지 그 박식함에, 그 활기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대체 그분의 건강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자녀들이 거의 교수나 의사여서일까. 평생 동안 최상의 건강 배려를 받은 것일까. 80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를 창작하기 시작하더니, 좀 있으면 본인이 그린 그림과 함께 시화집을 발간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80대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영국 출신 로즈 와일리 할머니,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101세에 타계하기까지 그림 붓을 놓지 않았다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운 모지스 할머니처럼, 그분의 그 활력, 그 열정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후천적 건강관리가 잘 되어서일까. 나는 그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내 부실한 건강상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고, 요즘 눈 때문에도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분의 전화는 언제나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른 아침 나는 컴퓨터를 여는 대신 콩을 깐다. 딸은 웬 호랑이콩을 한 자루씩이나 사오는지? 호랑이콩 뿐 아니다. 끼니마다 걱정인 반찬하고는 아무런 연괸이 없는 것들을 보는대로 다 사들고 오는것 같다. 나에게 일감을 던져주는 모양새다.요즘 그런 일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딸은 나에게 콩이나 까라는 것 같았다.
그래! 콩이나 까자. 호랑이콩 자루를 열었다.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누르고 비틀면, 한 깍지에 1개에서 많게는 7알이나 들어있는 콩알이 별로 힘들지 않게 쏟아져 나온다. 호랑이 콩 4KG 한 자루를 까는데 1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작은 봉지 5개에 나누어 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언제 꺼내 먹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밤을 삶아 넣어놓고 한 번도 꺼내 먹지 않았다. 냉동고에 들어가는 순간 까맣게 잊고 지내기 일쑤다.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또 호랑이콩이었다. 내가 요즘 책을 만든다고, 하도 힘들어 보이니까 쉴 겸 '콩이나 까라'는 암시같았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바라보며 대청마루에 앉아 콩을 까는 할머니! 매우 한적한 나의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