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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난다

능엄주 2020. 6. 26. 12:00

나는 눈물이 난다.

그 첫 번째는 나의 제4소설집에 수록한 한 작품 때문이다. 작품을 쓸 때 물론 얼마의 경험이 들어간다. 직간접으로 체험한 이야기가 기둥이지만 그 기둥에 칠을 입히고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작가의 창의성에 기반한 문학적 소양이랄까. 실력이랄까. 그러니까 작품에  표현된 내용 전부가 완전 사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들 말대로  뼈 만들고, 살 붙이고, 숨을 불어넣고, 가급적이면 만인에게 잘 읽혀지는 성공한 작품이 되도록 온 신경을 집중시켜 문장을 다듬었다. 그런데 눈물이 난다. 한 번이 아니고 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찡하면서 울컥 울컥 설움이 북바쳤다.  

 

기분이 썩 괜찮은 날도 예외가 아니다. 우울한 날은 더욱 그랬다. 며칠을 놔두었다가 새삼스럽게 펴 보아도 눈물바람은 여전했다.  어떻게 매번 눈물이 쏟아지는가? 워드하면서, 중간 중간 나는 눈물을 머금었다. 감정이 수시로 격해져서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조율했다.  A4 10매로 압축시켰다. 쓰면 쓸수록, 보면 볼수록 눈물은 샘솟듯했다. 

 

무심코 지내다가 그 작품에 이르러서는 여지없이 슬픔의 강물에 풍덩빠져 헤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힘겨운 세월을 지내왔기 때문인가. 울기 잘하는 나약한 심성이 문제인가.

 

두 번째는 6.25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시청하면서였다.  어릴 때 겪은 6.25보다,  내 소설에 서술돤 것보다  더 극심한 추위와 굶줄임, 파괴, 폭격, 이별, 부상, 사망이 TV 화면에 넘치게 펼쳐졌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 16개국의 정상들이 화면에 등장해 6.25에 대해 그들 나름의 소회를 피력했다. 전쟁은 인간 삶 중에서 가장 무가치한 대량 살생에 다름아니었다.

 

눈보라치는 한 겨울, 장진호와 피난민, 검은 포연속에 속수무책 죽음으로 가는 귀한 젊음들, 휴전 협정 직전까지 백마고지에서 죽이고 또 죽이는 피의 현장을 보면서 치가 떨렸다. 전쟁을 겪은  8,90 초고령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전쟁에 대한 증언은 후세를 향한 귀중한 교훈이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70년만에 운구, 국군 용사 147구의 유해 봉환 - 영웅들의 귀환은 해질 무렵, 대통령이 한 분 한 분 호명하므로 그 어떤 영결식보다 엄숙하게,  더 장중하게 진행되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얼마나 애통한가. 얼마나 그리운 산천인가. 잠시동안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 그분들의 친인척은 아니더라도 더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그야말로 발을 굴러 땅을 치고, 비통과 울분에 몸이 비틀어질 지경이었다.

 

 '전쟁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결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누가 살아남는지를 결정할 뿐이다.' -버트란드 럿셀 

 '군대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일으킨다.'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의 전쟁에 대한 명언을 되색이며 TV 를 껐다. 피곤을 못견뎌 그만 잠을 자러 간 것이 아쉬웠다. 아,아! 어찌 우리 잊으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