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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랜섬웨어 감염/변영희

능엄주 2020. 5. 16. 16:07

하루 아침에 벼락을 맞은 셈이랄까. 도적을 만났다고할까.

몇 달 며칠을 교정보고 보완한 원고가 한 순간에  몽땅 날아간 현실!

삼재팔란 무섭다더니 이렇게 치는가. 어제 고문에 버금가는 치과 치료를 마치고 귀가하여 그냥 곯아떨어졌다. 어둑할 무렵 잠에서 깨어 컴을 열어보고 나는 그만 가무라칠 번 했다. 뒷통수로 피가 싸늘하게 내려가면서 벙벙한 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는 살인적인 독감으로 서너달 뻘밭을 기게 하더니, 올해는 랜섬웨어가 침투해서 나의 생명 같은 원고들, 수 년을 걸쳐 고생고생하며 쓴 나의 장편, 단편집 ,수필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바 되었다. 나는 이를테면 문학인생 정리 차원에서 숱한 원고들을 바탕화면으로 끄집어내서 매일 밤늦게까지 교정에 매달린 것이었다. 6월 중으로 출간할 예정이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바상였다. 어떻게 하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지? 무슨 수로 그 많은 분량을 재생시킬 수가 있을까. 여기저기 전화하던 중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10분도 못 되어서 컴 닥터 기사가 방문했다. 그가 전화하기 전에 나는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그리고 인터넷에서 랜섬웨어에 감염된 문서를 복구한다는 업체도 몇 군데 검색해 보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도, 그리고 컴퓨터를 잘 할 수 있는 동료들에게도 정보를 들으려고 전화를 시도했다. 토요일이어서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의  지인은 내 사정아 딱해 보여서 사람을 급파한 것일까. 어쨋든 나는 혼자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다른 블로그에 들어갔던가. 다른 파일을 이메일로 받아 열었던가. 기억이 없다.

부지불식간에 어떤 경로로 내 파일이 날아가는 불행한 사건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되는 게 없어 더 안타까웠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방 뛰다가 지인이 보내준 컴 닥터를 만난 것이다.  그는 오자마자 내 컴을 열고 랜섬웨어 감염에  대해 낱낱히 설명해주었다.

그들{해커)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라며 영문으로 된  문서를 펼쳐보여 주었다. 5일 안에 비트코인(미화2,445弗, 우리돈 280만원상당) 을 송금하라. 만약 5일안에 송금하지  않고 5일을 지나면 그 액수는 배로 늘어난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해결방법은 1. 새 컴퓨터를 설치하는 방법,  2. 날아간 자료를 복원하겠다면 2445弗을 송금하고 해커조직과 대화, 타협를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주식처럼 매일 가격대가 변동하므로, 2445弗에서 더 얼마가 증가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돈을 받고도 반드시 날아간 자료를 되돌려준다는 확신도 미약하다고 한다. 그사이 백신이 발견되면  적어도 1년 반 기다려서 날아간 자료를 혹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얼마나 불확실한가. 설명을 듣기 전보다 더 아연했다.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금은 너무나 충격이 커서 결정을 못 내리겠다. 나는 그렇게 종결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어젯밤 한 숨도 못잔 생각을 하면 오늘 밤도 편하게 다리 펴고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무엇이든,  어떤 파일 한 개라도 살아 있는지 보고 싶었고, 살아 있는 자료를 다른 데로 옮겨놓아야 안전할 것 같았다. 컴 닥터에서 온 기사는 아예 컴퓨터 기기를 다 싣고 온 모양으로, 내 헤매는 심사를 눈치챈듯, 비트코인과 새 컴퓨터 설치 중 한 가지 방법을 결정하도록 종용했다. 수 개월에 걸쳐, 코로나19의 위협으로 집안에 갇혀 오로지 원고 수정, 보완에 올인했기 때문에. 다 완성된 자료 한 개라도 건질 수 있다면 기왕 컴 기술자가 온 김에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랜섬웨어 감염된 기존 컴퓨터를 옆으로 밀어놓고, 컴닥터 브랜드 - 새 컴퓨터 (윈도우 10)를 구입하기로 했다.

이게 또  얼마나 소요스러운 작업인가. 묵은 먼지도 털어내고 닦아야 하고,  비슷하면서 작동 형식이 서로 다른 컴퓨터가 나에게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그 기사가 신속히 와 준 덕분에 나는 자칫 흘려버릴 번한, 살아 남은 pdf 자료 몇 종류는 그 기사의 힘을 빌려 새 컴퓨터에 옮겨놓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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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골로 방문하는 우리 동네 컴퓨터 아저씨가 있다. 그는 월요일에나 전화로 연락해준다고 하면서 대강 그 복원 비용을 말했다. 월요일 나는 다른 볼일이 약속되어 있고, 내 황당하고 살 떨리는 공포와 충격을 월요일까지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유감인 것은 소설집 한 권 - 단편 9편의 족적은 전혀 어디서고 찾지 못했다. 장편소설 원고는 마지막 교정 본은 아니지만 한 부 찾게 되어서 그나마 감사했다. 최근 코로나19  일기처럼 써 모은 수필 7~80편은 하늘로 떴고 찾을 길이 없다.

어쩌겠는가. 이만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인걸. 다 없어졌어도 내가 그 해커조직에게 2445弗을 어찌 지불하겠는가. 내가 책써서 돈 벌은 사람인가. 누가 나에게 가용에 보태라고 용돈 준 사람 있는가. 다행히 정부에서 준 재난지원금이 내 컴퓨터를 교체하는데 일익을 감당해주었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글쓰느라 노상 엎드려 지내느라고 세상일에 어두운 내 일상이 이렇게 한 바탕 소동을 피웠다.  이제 넋놓고 앉아 있다.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세상 살기가 점점 무서워진다.

 

날아간 원고, 차분히 다시 쓰자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도 어려울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가능한 한 원주 창작집필실에 입주하기 전까지는 모든 일을 마무리해 놓아야 한다.

우선 밥부터 먹자. 아침밥은 어떻게 되었지? 지금 몇시지? 새 컴퓨터 여는 법이 생소하지만 잠시 그대로 놓아두자. 역경이 순경이 되는 날도 있을 것.. 꾸준히  쓰다보면 좋은 일 있을지 누가 아는가. 마음을 달래며 아욱국을 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