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에게/변영희
여행은 나에게
변 영 희
집을 떠나야 작품이 잘 써 진다는 작가를 만났다.
집에 머물러서는 글줄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그는 집 밖에 지신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익숙한 일상을 떠나 생소한 공간으로의 이동, 그곳에 불편 사항은 없을까? 라고 염려하는 것은 쓸데없는 노파심, 그 작가처럼 치열하게 창작에 몰입하지 않는 사람들의 우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얼마 후 알게 되었다.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난 다는 것은 현재와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도 된다.
고시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호젓한 산사에서 몇 달이고 은둔자처럼 두문불출, 전력투구하는 모습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고시원이란 장소도 대개는 기존공간에서 집중이 안 되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끈끈한 연결이고, 간섭이면서 구속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유가 제한된 곳이고, 지켜야 하는 규률이 항존하는 폐쇄된 집단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가끔은 집밖에서 지내보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여행, 즉 떠남이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일단 내 집이 아닌, 오래 길들어 긴장감이 느슨해진 터전이 아닌 자유로운 세계로의 탈출! 어디로든 떠나보면 보다 얻는 게 많다. 보고 배우면서 사고의 틀이 성숙해지고 다른 삶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글줄이 강물 흐르듯 거침없이 흘러나온다면 어찌 여행을 마다할 것인가.
떠나는 순간 자신의 본래 면목이 선연하게 잡히지 않던가. 여행의 필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주 여행을 도모하는 게 상책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이야말로 신선한 감성의 자극, 분출, 창작의 동인, 밑거름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해외나 국내여행이 어려울 때라면 서울 근교의 사찰 순례도 힐링 차원에서든 영혼의 정화차원에서든 좋은 방법이라고 여긴다.
요는 몸을 움직여야 생각도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앉은 자리 그대로에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 떠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어려서 떠나온 고향마을 답사도 무의미한 계획은 아닐 것 같다. 무조건 떠나리라. 2020년 새해 벽두부터 멀리든 가까이든 마음 내키는대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창작을 위한 떠남. 오래 된 현재를 탈피하는 데에 묘미가 있다하겠다.
남들이 잠을 잘 때 비행기의 손바닥만 한 창으로 자연 풍물을 감상하면서 글 쓰는 시간이 불원간 나에게 찾아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