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칼럼]래피의 사색 # 230 / '코끼리'/[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변영희 옮김

능엄주 2020. 1. 4. 10:27



[칼럼]래피의 사색 # 230 / '코끼리'

기사입력 2017.03.26 23:09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나는 아버지를 닮아 덩치가 큰 편이다. 가끔 사이즈가 큰 옷을 입으면 코끼리 같다는 말도 자주 듣는데, 그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험담이 아니라 칭찬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코끼리의 철학을 매우 좋아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코끼리다.

 

주역의 16번째 괘인 뇌지예(雷地豫, ☳☷)괘에도 나오는 '()'라는 글자는 상당이 많은 뜻을 품고 있는데, '미리, 머뭇거리다, 큰 코끼리' 등이 그것이다. ()는 은나라 때의 갑골 문서에도 나오는 글자인데, 사람이 코끼리를 끌고 가는 모양의 상형 글자다. 의미부인 (코끼리 상)과 소리부인 (나 여, 줄 여, 미리 예)가 결합해, 큰 코끼리를 뜻하게 된 것이다. 암튼 코끼리는 상당히 신중한 동물이어서 행동 전에 반드시 먼저 생각을 해 본다고 하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豫想(예상)하다는 말도 생겼다.

 

혹자는 "중국에 코끼리가 있었단 말인가?"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있었다. 코끼리뿐만 아니라 물소, 악어도 있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열대성 동물이 살았다. (울산 전천리 벽화 등을 보면 물소 사냥을 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의 지구의 평균온도는 지금보다 2도에서 3도 정도 높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황하 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를 나타냈고 은나라의 청동기를 보면 코뿔소, 하마, 악어, 코끼리 등의 형태를 본뜬 것들이 매우 많다. 은나라의 수도인 은허가 위치한 곳이 현재 중국의 하남성(허난성) 안양 부근인데, 하남성을 나타내는 글자에 코끼리가 들어간다. (허난성을 줄여서 라 부르고, 그곳의 상징 동물도 코끼리이다.) 이 글자가 점점 시대가 흐르고 황하유역에서 코끼리가 없어지면서 '즐기다'라는 뜻으로 변해가고 나중에는 음이 같은 (미리 예, '일기예보'에 쓰이는)의 뜻으로도 쓰이게 된다.

 

코끼리는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동물이지만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그것을 알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물가 같은 데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물론, 코끼리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죽기 전에 이빨이 다 닳아 버려서 씹어 먹지 않아도 되는 연한 풀을 찾게 되어 그런 풀들이 많은 늪 속에 간 코끼리가 기력이 없어 빠져 죽게 된다는 설도 있다.) 암튼 여러 자료에서는 코끼리가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밀림 속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코끼리들의 무덤으로 향한다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덤에 도착하면 산처럼 쌓여 있는 뼈와 상아 위에 저 홀로 고요히 몸을 누인다고 하는데, 여기서 상아탑이란 단어도 생겼다. (코끼리는 죽을 때 자기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지역으로 가서 죽어 아름다운 상아(象牙)의 탑()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이 사회와는 조금 떨어져 진리 탐구에만 힘쓰는 대학의 특성을 지적한 표현이다.) 이 얼마나 신비한 장면이며,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자연의 운행 원리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하나라도 더 가지려 아둥바둥하고, 한 명이라도 더 낙오시켜 머리 위를 밟고 오르려고 온갖 부정한 일까지 저지르는 인간 군상에 비하면 숭고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15장 서청(徐淸)에는 아래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

 

豫兮(예혜) 若冬涉川(약동섭천), 猶兮(유혜) 若畏四隣(약외사린) - 직역하면

 "머뭇거리네! 겨울에 살얼음 냇길을 건너는 것 같고, 망설이네! 사방의 주위를 두려워 살피는 것 같다."가 된다.

 

여기서()'거대한 코끼리''머뭇거린다'는 뜻이다. 거대한 코끼리가 겨울 냇가 앞에서 신중하게 살얼음을 밟아가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아둔한 듯이 보이지만 명석하고 사려 깊은 코끼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구절이다. ()'원숭이''망설인다'를 뜻하는 글자다. 원숭이는 겁이 많아서 주변을 살피기를 잘하고 두려워하기를 잘 한다. 둘 다 긍정적인 '조심'을 뜻하기는 하지만 예()는 사려 깊음이고 유()는 두려워한다는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어 그 뉘앙스가 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 요약.

 

코끼리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코끼리는 또 몸집이 큰 동물이지만 먼저 건들지 않으면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 그래서 관대하고 여유롭다. 우리 인간들이 코끼리를 배우면 얼마나 좋으려나.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는 사람. 이래서 나는 코끼리가 좋다. 나부터 코끼리처럼!


[김동효(DJ래피) 기자 nikufesin@hanmail.net]
<저작권자ⓒAsiaBigNews & asiabig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출처 :뉴스 Z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