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어요!
주말이면 9단지로 가는 게 상례화되었다.
더러 몸이 아프거나 다른 볼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말을 이용해 아들네로 간다.
미리 가지고 갈 것을 챙겨놓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무작정 가는 경우도 생긴다.
오늘은 날씨가 푸근했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좋을 만큼이었다. 개나리꽃이 방실방실 피어날 기세였다.
이상기온으로 하여 호수공원 아치 형태로 어우러진 장미동산에서 때에 맞지 않게 피어난 장미꽃을 보듯
푸근한 날씨에 마음이 놓였다.
궁여지책으로 연근을 씻고 데쳐서 후라이 팬에 굽기로 했다.
애호박과 감자도 있어 그걸 또 부쳐냈다. 부쳐내는 사이사이 한 개씩 집어 시식 하노라니 그 맛이 양호했다.
아보가드 식용유였고 밀가루는 주로 통밀 우리밀가루에 백설표 부침가루를 섞었다. 아침식사 전이어서일까? 방금 부쳐내 따끈해서일까.
어! 맛이 좋아요! 연근이 아삭아삭 씹히는 게. 짐짓 과장 표현을 했다.
배추잎을 후라이 팬에 부쳐내 초간장에 찍어먹으니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별미였다. 옳지 오늘은 이걸 가져다 주어야지.
부지런히 주방 뒷설거지를 한 후 9단지로 들고 갔다.
"에이! 우리 애들 안 먹는다니까요. 어머니는 우리 걱정 말고 글이나 쓰시라니까. 먹을 거 많아요."
누가 모르니?
냉장고문을 좌우로 번갈아 열어 먹을 것의 종류와 분량을 확인했다. 늘 하는 방법이다.
귤 사과 오렌지, 감,과일 그것은 냉장고 설합의 주인 격이니 더 볼 것도 없다. 한 마리씩 포장한 생선도 건어물도 설합가득 채워져 있었다.
국은 홍합국이었다.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파김치며 녀석들 외가에서 보내온 밑반찬과 김장가짓수가 다양하다. 김치만으로도 식욕이 날듯하다.
작은 녀석 방문을 열었다. 아니 너 교회 안갔어? 나는 묻지 않았다.
대부분 엄마 아빠 손잡고 , 차타고 일가족이 가는 교회에 따라다니다가 녀석은 그만 중도하차? 교회 출석을 중단한 것 같았다.
내가 염려한 그대로가 맞는 것 같았다.
우울하게 엎드려 있는 작은 녀석을 일으켜 부침게를 먹게 했다. 더 줘! 배추도 맛있고 호박이랑 감자도 주고 ...
목 마를 가봐 알카리수 컵을 주니 귤을 까서 달란다. 초등 고학년 이 녀석이 어리광을 피운다.
그래! 다 들어주마. 너가 어리광 부릴 데가 어디겠냐.허리가 좀 뻐근하게 아파오지만, 녀석의 주문을 달게 감수한다.
곧 크리스마스다.
녀석들 엄마가 살아있다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려고 두 녀석을 거느리고 신명나게 시장을 오갈 터인데 하고 녀석의 응석, 요구, 주문을 다 받아 주었다.
안 먹기는~ 잘 만 먹는구나!
치킨, 피자, 햄버거, 케익보다 순수한 정감이 묻어나는 한국 음식이 더 좋은 걸 녀석들도 잘 알았다. 제엄마가 병가病暇 내고 학교 쉴 때 노상 요리실습을 하지 않았던가. 집에서 살림살이하며 애들하고 놀아주는 게 그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면서 즐거워라 신나라 했다.
나는 묵묵히 수북하게 쌓인 설거지를 정리하고 막 꽃송이를 터뜨리는 양란과, 화분의 주인나무보다 더 부지런히 가지를 버는 기생寄生식물이 함께 자라는 대형화분에 물을 듬뿍 부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번 안 먹어요! 로 나의 접근을 제지하는 아들.
젊어 고생 했으니 늦게라도 맘껏 소원을 이루라는 아들의 갸륵한 뜻을 왜 모르겠나.
경자년 새해 더욱 매진하기로 한다. 기실 인생 손익계산서를 아직도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으니까. 나태하지 않기 위하여, 허망하지 않기 위하여 새해 일정표를 짤 것이다.
안 먹어요! 하더라도 내년에는 녀석들 엄마처럼은 아니어도 더 근사한 것을 장만해야 할 것 같다.